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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 배후의 김일성의 햇볕정책과 남침땅굴



  지금부터 41년 전이었던 1967년 11월 17일자의 위의 대한뉴스 동영상과 아래의 사진에서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본다. 멀리 내다 보시고 고속도로 건설에 박차를 가하시는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김대중은 고속도로 건설현장에 드러누워 경부 고속도로 건설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오늘날에는 심지어 5.18사기꾼들조차 김대중의 그 짓이 잘한 짓이라고 주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김대중의 그런 미련한 선동구호에 속아넘어간 이들이 많아서 김대중은 불과 4년만인 1971년에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떠올랐다.



  김대중이 경부 고속도로를 반대한지 꼭 30년만에 대통령에 당선된 후 다시 2년 지나 내놓은 대북정책이 바로 햇볕정책이라는 것이었는데, 김일성이 1967년 김대중을 국회의원 만들어 주기 위해 사용했던 전략은 두더지 전략이었다. 광주사태에 대한 진실 중의 하나는 광주사태 당시 전두환도 김대중도 광주에 전혀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었다는 사실이다. 전두환이란 이름은 폭동 주동자들이 외치는 구호로 생전 처음 들었고, 김대중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기껏 어디선가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을 뿐이었지 광주인들이 김대중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질 만큼 광주에서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국민이 혼동하고 있는 것과 달리 김대중의 고향은 신안군이었으며, 1967년 목포에서 국회의원 선거로 출마할 때 김일성이 간첩들을 보내 통혁당이란 지하당을 조직하고 김대중 후보를 위한 선거운동을 하게 하였다. 무엇이 지하당 공작이던가?  바로 햇볕을 싫어하는 두더지들이 놀아가 아니던가? 문근영의 외조부 류락진이 바로 그 통혁당이란 지하당 요원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무엇이 김대중을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선거운동이었던가?  타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한 흑색선전과 더불어 바로 타 지역의 좌익 및 그 가족들의 주민등록을 목포로 옮기는 편법이 그들의 부정선거운동이었다.

  3.15부정선거라는 용어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이 쓰는 말이고, 실제로는 운동권 편에서 부정선거운동을 했었다. 당시 야당의 조병옥 후보는 신병치료자 미국에 가서 수술받던 중 사망하였으므로 대통령 후보는 이승만 단독후보였다. 따라서, 대통령 당선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으며, 민주정치 선거에서는 부통령 지명은 대통령 당선자의 고유권한이다. 예를 들어, 미국 민주당 후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부통령은 공화당이 페일린 여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주의에서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우리가 공화당을 지지해도 그런 주장을 할 수는 없다. 1961년의 한국에서도 당연히 부통령 지명은 이승만 대통령 당선자의 고유권한이어야 했음에도 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던 것은 민주주의 정당이 무엇인지 몰랐던 운동권 미개인들이 정당 정치를 조선시대의 사색당파와 혼동하였었기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좌편향 교육의 역사왜곡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고서도 박정희가 쿠데타로 대통령이 되었다고 말하는 미개인들이 많이 있다. 박정희는 1963년 가을 3공화국 헌법에 의한 직선제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하여 정책 대결로 윤보선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던 것이지 좌익 미개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총칼이나 탱크로 대통령이 되셨던 것이 아니었다. 자, 4.19데모꾼들은 직선제를 독재와 동일시하였다. 그리고 무식한 4.19데모꾼들이 직선제를 없애버림으로 국민이 참정권을 상실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참정권을 되찾을 방법이 5.16산업혁명 외에 있었는가? 5.16산업혁명이 있었기에 4.19데모꾼들이 없앴던 직선제를 회복하는 3공화국 헌법을 국민 손으로 통과시킬 수 있었고, 그 헌법에 따른 직선제 선거에 출마하여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것이다.

  4.19데모꾼들은 직선제 선거만 없앴던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었다. 본래 민주주의 정치는 양당 혹은 다수당 정치인데, 4.19데모 후의 국회는 일당 독재의 모양새가 되었다. 그리고, 4.19데모로 집권한 세력이 자기네가 통장, 반장 다하겠다면서 대통령 감투도 총리 감투도 자기네끼리 나누었는데, 문제는 그 정부가 윤보선 정부인지 장면 정부인지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2공화국은 장면 정부라고 부르나 윤보선 대통령이 인정하지 않는 정부였다.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통치권이 자기에게 있다며 매일 싸웠으나, 헌법학자들조차 누가 통치자인지 판단내리지 못했으며, 외국에서는 누구를 대한민국 외교의 주체로 여겨야 하는지 몰랐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던 4.19데모꾼들에 의해 형성된 정부는 이토록 무능정부였기에 그대로 앉아 나라가 망하든가 박정희가 시대의 부름에 응하여 5.16산업혁명을 주도해 주든가의 선택만이 있었던 시대였다.



  두차례의 미국유학 시절 미국 민주주의 행정을 깊이 연구하셨던 박정희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크게 신장될 수 있었음에도 국민은 여태껏 김대중이란 민주장사꾼에게 속아왔다. 거물간첩 김용옥은 그의 저서 "소리없는 전쟁" 69쪽에서부터 김대중 당선시키기 두더지 작전을 증언한다. 북한은 통혁당이란 지하당 전남도당에 광주와 목포 두 곳에서 후보를 당선시키라는 지령을 받았었는데, 전남도당은 목포 한 곳에 표를 몰아오기로 결정하고, 전라도 다른 시, 군에서 통혁당 당원들뿐만 아니라, 그 연고자들까지도 주민등록을 옮기도록 의결하고, 그 결정을 각급 하부조직에 하달하였다 (71쪽). 이것이 민주화 운동이었는가? 아니다. 그것은 부정선거운동이었다.

  만약 민주주의 선거의 본래 목적이 정책 대결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유념한다면 정책 대결로 승부를 겨루는 박정희의 선거 유세가 훨씬 민주적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자, 1967년 부정선거운동으로 당선된 김대중은 1968년에 경부고속도로 건설 결사 반대를 하여 유명세를 타고 1971년에 대선 후보가 되었다. 무엇이 그의 선거구호였던가? 조국 근대화 반대였다. 박정희 후보가 "조국 근대화"를 외치니깐 "조국 근대화 반대" 슬로건을 내걸었던 것이다. 김대중은 자기가 당선되면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기업을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놓앗다. 김대중이 공산당 이름으로 그런 공약을 내놓지 않았을 뿐이지,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공약이었다. 그런 공약만으로 김대중이 박정희의 맞상대가 될 수 있었을까?  아래 신문기사 사진에서 우리는 김대중이 이때에도 지역감정을 자극하며 지역감정을 읅어먹었음을 본다.



  자, 김일성이 지하당이라는 두더지 작전으로 키워준 김대중이 햇볕정책을 말하였을 때 도대체 그 의미가 무엇이었던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햇볕정책인가?  김정일이 땅굴 파놓고 두더지 작전으로 핵폭탄 개발하였을 때 두더지 작전으로 8억불 비밀대북송금한 것이 햇볕정책인가?  아니면, 햇볕이 김대중의 정치 스타일이란 말인가? 김일성이 1973년 김대중에게 통혁당 두목 감투를 주며 문세광이라는 똘마니를 붙여주었을 때 김대중이 문세광을 데리고 다니다가 사주하여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것이 햇볕 스타일이었는가?  문세광을 사주하여 육영수 여사 암살 사건의 배후였던 그가 단 한번이라도 그가 미안하다는 뚯을 표시한 적이 있었는가?



  남북관계에 관한 한 사실 김일성이 김대중보다 햇볕정책의 원조였다.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한마디로 북미양자회담을 하라는 말로, 한반도의 운명을 북미양자회담으로 결정하고 통미봉남하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런데, 그런 주장의 원조는 바로 김일성이었다. 위 뉴스 동영상에서는 우리는 김대중의 옛 부하 문세광이 1974년 광복절 육영수 여사를 암살하였을 무렵 김일성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음을 본다. 김일성이 1980년 5월 20일경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키면서 남침할 예정이었다는 사실은 그해 4월 김일성이 루마니아로 가기 전에
중국을 방문하여 남한에서 민중무장봉기를 일으키면서 남침할 것이라는 계획을 보고하고 동의를 구했기 때문에 알려졌다. 당시 경제 재건을 위해 미국과의 외교 정상화를 원하던 중국은 제2의 한국전쟁으로 다시 미국과 충돌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즉시 이 사실을 일본과 미국 정부에 통보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위의 동영상 뉴스는 1974년 8월에도 김일성이 루마니아를 방문하였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1974년 8월 김대중 수하의 암살범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시도하다가 육영수 여사를 암살한지 불과 12일만에 김일성은 루마니아의 차후세스크 대통령의 도움으로 미국 포드 대통령에게 특사를 보냈다. 김일성이 루마니아로 여행하는 시간과 루마니아로부터 미국으로 특사가 달려가서 포드 대통령을 알현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5년 후의 광주사태 때처럼 김일성이 미리 루마니아로 갔었다는 것이 추정되며, 이는 조총련 소속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다는 것을 사전에 알고 시사한다. 그런데, 김일성의 특사가 포드 대통령에게 전한 메시지는 놀랍게도 요즘말로 햇볕정책이지 아니한가!



  포드 대통령은 1975년 3월 월남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났을 때 어물쩡하다가 월남을 공산주의자들 손에 넘겨준 바로 그 대통령이었다. 무엇이 월맹의 작전이었던가? 바로 햇볕정책이었다. 월남과 평화조약을 맺었으며, 절대로 남침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 그러나 표면상의 그런 햇볕정책과 달리 월남에서 민중무장봉기를 일으키는 방법으로 침략하였다. 그리고, 월남 중부지방에서 좌익이 민중무장봉기를 일으켰을 때 포드 대통령은 월남의 운명은 월남 국민 스스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겠다며 파병하지 않았다. 한국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김잃성은 인혁당과 남민전 등을 동원하여 언제든 남한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땅굴을 파는 두더지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1974년 11월 23일자의 위의 대한뉴스 동영상은 휴전선에서 첫번째 남침 땅굴이 발견되었음을 보여준다.



  1975년 봄 월맹이 월남 중부지방에서 시민군을 동원하여 무장봉기를 일으키면서 시민군으로 위장하고 시민군 틈에 섞여 사이공을 향해 돌격해 오고 있었을 때 월남의 좌익언론은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시민군이 오고 있다고 방송하였다. 1970년대에 베트남 공산주의 세력의 도시 게릴라 방법을 그대로 모방하여 국가를 전복시키려 했었던 인혁당이나 남민전 등의 간부들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하고 있는 이상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실로 그 상황이 패망 직전의 지유월남과 닮은꼴이 아닌가?

  최근에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은 박노해 시인도 광주사태 훨씬 이전에 무장봉기를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증언하거니와 위의 1975년 3월 29일자 대한뉴스 동영상은 그럼 무장봉기 음모의 배후가 바로 김일성의 지시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광주사태는 무장봉기였다. 그것은 베트남 공산주의자들과 쿠바의 공산주의자들이 사용했던 도시 게릴라 방법을 그대로 모방한 무장봉기였다. 어떻게 시민이 감히 총기무장할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위의 뉴스 동영상에서 실제로 땅굴을 파고 자유자재로 남한과 북한을 오갔었던 탈북군인은 땅굴을 판 목적 중 두번째 목적이 남한에서 무장봉기를 일으키면서 특수부대를 게릴라로 보내 3일만에 남한 전체를 완전 정복하기 위함이었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그의 이 증언은 1980년 4월 김일성이 중국에 보고했던 남침전략과 그대로 일치하는 증언이다.

  김일성이 김대중의 똘마니 문세광을 시켜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던 1975년 8월 그는 미국 포드 대통령에게 특사를 보내 햇볕정책 사인을 보냈다. 월맹이 월남과 맺었던 평화조약과 똑같은 평화조약을 맺겠다는 제스추어를 썼다. 그러나 바로 그때 그는 땅굴을 파는 두더지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김일성의 작전은 무력남침이었다. 그리고 땅굴을 판 이유는 남한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날 때 특수부대를 보내어 3일만에 남한을 완전 점령하기 위함이었다. 바로 여기에 1975년 4월 30일 월남이 패망한 것을 지켜본 한국의 법관들이 인혁당 사건 주동자들을 재판을 연기해서는 안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불과 5년만에 김일성은 광주사태를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행히 전두환 장군이 1978년 1사단장 시절 제3의 땅굴을 발견해 내셨기에 우리가 그 위기를 모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자, 김대중에게 무엇이 햇볕정책인지 물어보자. 북한군의 두더지 땅굴을 더 이상 발견하지 못하게 막으면 햇볕정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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