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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김대중의 거래관계에 대한 증언


(손충무씨의 증언 동영상 출처: http://usinsideworld.com/article/view.php?bbs_id=news&doc_num=5123 )

   위 손충무씨의 증언 동영상에서 김대중에 대한 증언은 자료가 명확하다.  일례로, 15대 대선을 즈음에 입막음용으로 김대중의 대변인 박지원이 8억원에 가까운 돈봉투를 들고 왔었다는 사실을 손충무씨는 증언하는바, 그 증언이 사실임이 1년 현역 기자들의 잇다른 고백 때 그대로 밝혀졌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etc&oid=002&aid=0000006757 ).  작금, 광우병 괴담 촛불시위는 김대중이 각 언론사에 뿌려놓고 심어놓은 좌익들이 조작, 선동하는 것인바, 김대중, 노무현 정권 이전에도 김대중의 검은 돈에 거의 모든 언론인들의 양심이 팔려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주장은 손충무씨가 김대중에게 속은 것이지, 박정희 대통령께서 김대중을 죽이려 하신 적은 없다.  위의 동영상에서 손충무씨의 인터뷰 날자는 2002년 12월 15일이다,  그런데, 5년 후인 지난 해 (2007년) 10월25일 안병욱 진실위원장은 ‘미국 측 개입으로 수장될 뻔한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김대중의 주장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이 배 밑창에서 미국 비행기 (소리를) 들었다는 얘기 외에 이를 확인할 근거가 없다. 그날 배에 있었던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그런 일 없다고 확인했다”면서 부인했다.>  김대중을 추종하며 거짓말을 배워온 안병욱이 보아도 김대중이 사기친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그러면, 왜 김대중은 그런 거짓말을 지어냈을까?  우리는 바로 그때가 김대중 일당이 문세광을 시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진행하고 있었던 때였음에 주목해야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쪽에서 전라도 깡패를 동원해서 내가 죽을 뻔한 적도 있다”면서 “전부 DJ가 한 일이다. 참 나쁜 사람”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불발로 그치긴 했지만 김대중이 첫번째 내란을 시도하려 했던 1972년에도 박정희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음을 김재규와 권영길이 증언하였으며, 유혈무장봉기 거사 계획이 있었음을 이종찬과 김지하 등이 시사하였다.  그 사건 직후 김대중이 일본에서 한민통 두목으로 활동하던 1973년에도 박정희 암살 계획은 여전히 진행되어 한민통 행동대원 문세광이 1년간이나 박정희 암살준비를 하다가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를 숨지게 했던 것이다.  1973.8.8 金대중도쿄납치사건은 김대중이 일본에서 반국가활동을 하는 것을 중앙정보부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 일어난 사건이었는데, 김대중의 한민통에서 박정희 암살 준비를 하고 있던 때에 김대중이 "박정희가 자기를 죽이려 했다"는 거짓말을 지어내어 널리 퍼뜨린 이유는 무엇일까?

   김일성이 김대중에게 한민통 두목 직책을 주기 근 십년 전에 "통일혁명당" 이라는 친북 유령정당 앞잡이로 세웠었다.  통일혁명당과 관련하여 손충무씨가 일본 공안당국을부터 입수한 김일성과 김대중의 거래내역 기록은 북한에도 있는바 前 북한노동당 통일전선부 근무. 장혜영씨는 그것을 이렇게 증언한다:

<<金大中,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대한민국 대통령인가, 아니면 북한 독재자의 충복인가. 金大中의 이름은 이미 그가 한국의 민주투사로 인정받던 1970년대에 통전부의 문건에 올라 있었다. 북한이 인물 흡수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게 된 계기는 1960년 4·19 혁명이었다. 金日成은 그때 통일의 호기를 놓쳤다고 두고두고 후회하면서 4·19 혁명이 붉은혁명으로 승화되지 못한 요인은 그것을 주도할 만한 적색인물과 그 중심의 지하당이 없었기 때문이니 하루빨리 한국 내에 혁명정당을 구축할 것에 대한 과업을 주었다.

북한은 급기야 「통일혁명당」을 결성하고 마치 그것이 한국 내에 실존하는 지하당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미국·일본·유럽∇南亞에까지 그 지부를 설치하고 요란하게 선전했다. 밖에서부터 만들어진 이 유령조직을 안으로 확대하기 위하여 「통혁당」의 이름으로 출간된 각종 격문들과 인쇄물들을 한국에 살포하거나 침투시키는 것은 물론, 인물포섭과 지하당 결성에 총력을 다했다.

이를 위해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를 돌격대로 내세웠다. 1950년대에 조직된 이 협의회라는 것은 조소앙, 안재홍과 같은 납북자들과 월북자들로 이루어진 순수한 이남 출신 집단이다. 이 협의회는 한국 전반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함께 편지발송, 방송심리전 등 온갖 수단을 통해 한국에 남아 있는 인맥을 최대한 동원하여 對南전선을 형성하는 것을 主업무로 삼았다. 지금은 「재북평화통일촉진위원회」로 격상시켜 그 명맥을 잇는 것과 동시에 북한의 위상을 선전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對南공작의 제1과제를 反정부 의식이 강한 인물 흡수와 지하당 구축, 左派단체 확산으로 정한 통전부는 1970년대에는 민주투사로 자처하는 대표적인 인물들에게 金日成의 친서와 공작비도 보낼 만큼 혁혁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지금도 통전부 기밀실에는 朴正熙(박정희)의 유신독재 반대를 부르짖으며 金大中이 일본에서 맹활약하던 당시 그 흡수공작에 적지 않게 공헌한 조총련 산하 비밀요원들에 대한 활동내용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朴正熙가 암살된 후 金大中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는 정국조종 전술案도 보관되어 있다.  1974년 8월15일 陸英修 여사 암살사건은 바로 이 전술案의 첫 단계에 해당하는 작전이었다.

남북 頂上회담 준비역을 맡았던 송호경에게 金正日은 『金大中이는 돈을 달라면 돈을 주게 돼 있고, 쌀을 달라면 쌀을 주게 돼 있는 사람이니 대화 상대라 생각지 말고 무조건 10억 달러를 내리 먹여!』하고 지시했다. >>




   광주사태 당시 서울의 김대중 홍위병들이 제작한 "광주사태 속보 대자보"에 의해 광주사태로 알려진 무장유혈폭동의 본래 용어, 즉 김대중이 전국적 민중봉기를 선동하기 위해 사용하였던 용어는 "민중봉기"였다.  1980년 5월에 "민주화운동"이란 용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김대중의 본래의 용어는 민중봉기였다.  1974년 3월 민중봉기의 결과로 4월 월남은 완전 공산화가 되었음에도 "민주화"를 "공산화"의 뜻으로 사용하는 김대중은 "월남처럼 민중봉기가 일어나야 민주화가 된다"고 말하였으며, 제2의 동학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로 광주사태를 선동했었다.

   탈북자들 역시 광주사태를 김대중의 본래의 용어 "민중봉기"로 듣고 이해하였으며, 지금껏 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단지 우연일 수 있을까?  어째서 광주사태라는 동일 사건에 대하여 (김대중의 본래의 거사 계획은 전국적 민중봉기였음) 김대중과 북한이 동일한 용어를 공유하게 된 것일까?  어째서 김대중은 초지일관 김일성의 연방제 적화통일안을 지지하여 왔는가?  김대중은 국고에서 8억불을 도둑질하여 김정일에게 비밀송금하고 6.15공동선언을 하였으며, 지금도 광우병 괴담 촛불시위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6.15공동선언을 이행하라며 압력을 넣고 있지 않은가.

   탈북자들이 그대로 인용해 주는 김일성의 말 <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 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 전화국, 변전소, 방송국 등 중요 공공시설들을 점거하는 동시에 단전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 합니다.>는 광주사태 때 우리나라가 어떤 위험에 처할 뻔 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푸른 눈의 목격자 힌츠페터는 1980년 5월 21일 아침 국군이 전화선을 끊은 것으로 오해했었기에 국군에 대한 악감정을 품고 수십년간 광주시민군 옹호 황동을 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군이 아니라 시민군이 전화선 일부를 끊었었다.  5월 21일 새벽 시민군이 KBS벙송국을 불태웠을 때 전화선도 함깨 타서 시외전화선 일부가 갑자기 불통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중요 공공시설들이 무장시민군에 점거 당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도대체 무장시민군이 무슨 이유로 세무소를 불태우며, 도청을 점거하며, 교도소를 습격했었던 것일까?  그리고, 해마다 북한에서 개최되는 518행사들에 대한 518단체들의 입장은 무엇인가?


그리고 북한당국이 중장비에까지 "518청년호"라는 휘호를 달아놓았을 때 어느쪽 청년을 가리키는 것일까?

광우병 괴담 배후가 조선로동당 간부들과 금강산서 反美회합



 
탈북 북한군 장교 임천용씨 인터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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