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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일당이 퍼뜨린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

박관현 연행 설… 누가 퍼뜨린 것인가

    5.18첫날인 18일 오전 9시 20분께 전남대 정문앞 거리. 학생들은 캠퍼스에 진주한 계엄군 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때 어떤 학생이 흥분한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전남대 근처에 사는데, 오늘 새벽 산책을 하다 박관현이가 연행되는 것을 봤어요. 검은 승용차에 실려 정문을 통해 후문 쪽으로 갔는데, ××사단 연병장에 감금돼 있는 모양 이예요."

    "그래요? 총 학생회장이 무슨 죄가 있다고…."

    학생들은 모두 놀라고 있었다.

    '어떤 학생'의 이 목격담은 사실과 다르다. 연행된 것이 아니라 이리 저리 검거망을 피해 그날 저녁 여수 돌산 도에 도착, 몸을 숨겼기 때문이다.

    [광주사태가 끝난 후] 광주 사람들은 박관현의 행방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필시 죽었을 것이다. 일본이나 미국으로 망명했을 것이다.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등등 추측도 가지각색이었다.

    그 중에서도 '일본 망명 설'은 마치 사실인 것처럼 육하원칙을 갖추고 떠돌았다.

    박관현은 5.18직후 돌산 섬을 떠나 대처인 서울로 갔다. 서울 피신 생활은 눈물나는 것이었다. 막노동. 리어카 장사로 연명했으며, 삼양동 산동네 시절의 그의 거처는 다락방이었다. 훗날 그는 요꼬 공장 생활도 했다.

    82년 3월 18일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수배 중인 시국 사범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펼쳐졌다. 이 때 요꼬 공장 노동자들이 경찰에 신고, 그는 붙잡히는 몸이 되었다. 피신 시절 그의 가명은 '박건욱'이었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3620.html).

   1980년 5월 18일 "박관현 사망설" 유언비어는 김대중의 국민연합 사무국장이었던 윤상원의 조직이 퍼뜨린 유언비어였다. 

    박관현의 은신처에 전화를 걸었다. 총무 부장 양강섭이 전화를 받았다.

    "예비 검속(연행)을 피한 학생회 집행부의 조직을 투쟁 조직으로 확대 개편하고, 시가지 투쟁 에 나서야 한다. 또한 화염병을 만들어 시가지 투쟁 현장에 배급해야 한다. "

    양강섭은 윤상원이 화염병의 제조 방법까지 상세히 설명하더라고 기억하고 있다. 양강섭은 윤상원의 제안에 대답만 할 따름이었다. 이미 학생 투쟁 조직은 와해되었고 박관현도 광주를 빠져나갈 즈음에 있었기 때문이다.  18일 오후 늦게 박관현과 몇 사람이 광주를 빠져나갔다.

 


21일 우리들에게 도피처를 제공해 준 사대 정정의 교수한테 전화가 왔다. 관현이 가명이 관수였는데 교수는 관수가 죽었다는 소문이 광주에 파다한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3_7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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