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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동영상/ 사이곤의 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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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월남 패망의 교훈/ 사이곤의 함락
 

사이곤의 함락
(The Fall of Saigon)
1막


  "The Fall of Saigon" is the final episode of the multi-award-winning 1983 series "Vietnam: A Television History." Told in news clips and recollections by Vietnamese and Americans (including Gerald R. Ford and Henry Kissinger), the hour begins with the January 1973 peace treaty. It amounted to "a death sentence" for South Vietnam, says a South Vietnamese colonel. And when the end came, it was chaotic. "We really just cut and ran," recalls U.S. aide William LeGro.

 1983년 제작.


 

사이곤의 함락
(The Fall of Saigon)
2막

  "The Fall of Saigon"(사이곤의 함락)이란 뜻의 이 비디오는 월남 패망 8년 후인 1983년에 제작이 완성되어 여러 개의 상을 수상하였다. 

   당대의 뉴스들과 함께 역어진 이 다큐멘터리에서 월남인들과 포드 미국 전 대통령 및 헨리 키신저 특사 등 미국인들이 월남 패망을 회고한다.  월남의 패망과 공산화는 1973년 1월 파리강화조약에서 시작된다.  평화 협정은 결과적으로 월남 국민에게 사형선고였다고 한 월남 대령은 말한다.  월남 패망의 날 대혼란이 있었으며, "미국인들은 황급히 월남을 빠져나와야 했다"고 미국 보좌관 윌리엄 리그로는 회고한다.

 

요점 요약 및 적용과 설명
 

   노무현은 전시작전권을 단독행사하겠다는 구실로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그 대신 미국 대통령의 구두 약속으로 국민의 안보 불안감을 무마하려 한다.   닉슨 대통령도 1973년 주월미군을 철수시키면서 전쟁나면 다시 파병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반전 여론은 닉슨이 탄핵당하도록 몰고 갔으며, 1975년 3월 월맹군이 다시 남침하였을 때 미국은 월남전은 월남과 그 나라 국민이 알아서 자주 국방할 문제라며 파병은커녕 군수품조차 지원해 주지 않았다.
 

노무현은 전시작전권을 단독행사하면 군 사기가 높아진다고 우겼지만, 미국이 군수품 지원 중단으로 탄약은커녕 기름과 붕대조차 고갈된 월남군은 다낭이 침략당하자 전의를 상실하고 후퇴하였다.  수도가 침략군에 함락당하였던 한국전쟁 때도 유엔군 참전 소식이 전해지자 그제서야 국군이 사기가 충천하여 북괴군을 상대로 전투하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다낭이 침략군에게 함락당하였는데도 좌익 주도의 월남 언론은 중부 지방에서 시민군이 민주화운동을 일으켰다고 보도하였다.  티우 대통령 정부가 국민에게 전쟁 발발 사실을 알리려 해도 좌익이 장악한 언론은 민주화운동설만 주장하였으며, 좌익 시민단체들은 중부지방 민중봉기설을 대선에 이용하려고만 하였다.  정부가 전쟁 발발 사실을 안알린 것이 아니라 못알린 것이었다.  티우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려 하면 좌익 시민단체들은 안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며 들고 일어나, 오히려 대통령 하야를 압박하였다.  그러니, 정부가 국민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고 느낀 백성들은 정신적 공황에 빠졌으며, 좌익 시민단체들의 큰 목소리 때문에 주적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월남군 병사들 역시 달아나기에 바빴다.
 

 1975년 4월 29일 월맹군 탱크들이 6개 방면으로부터 사이공 시가지로 몰려들어오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시민군의 민중봉기가 아니라 적군의 침략이었음을 깨닫은 사이공 시민들은 그때서야 미국이 월남 방어를 포기하지 말아줄 것을 바랐으나, 때는 너무 늦었으며 미국인들은 완전히 월남에서 철수하였다.  1973년 1월 남북이 평화협정을 맺게 하고 미군을 철수시키면서 전쟁나면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오지 않은 미국도 잘못이었지만 자유를 사랑하는 애국 국민의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으니 몇몇 미국의 전문가들이 월남 문제는 월남 국민에게 맡기고 미국은 더 이상 군사지원을 해주지 않을 것을 권했기 때문에 닉슨 대통령과 그 후임자 포드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 얼마나 슬픈 패망의 역사이며, 오늘날의 한국 상황과 얼마나 흡사한가!

 

BBC News on Video

 

조선일보 11월14일자 김형기 논설 위원의 태평로의 기사에서 보면 "1973년 헨리 키신저와 월맹의 레둑토가 베트남전을 끝낸다는 평화협정을맺었다 키신저는 협정대가로 월맹에 40억 달러를 줬다 월남과는 유사시 즉각 해 공군을 보내 지원한다는 방위조약을 맺었다 키신저는 이 업적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2년뒤 월남은 월맹의 전면 공격을 받고 패망했다 믿었던 미군은  오지 않았다 월맹이 남침 준비를 하는 동안 월남은 민족 평화 화해 협력 교류 라는 평화협정 5원칙에의 환상에 젖어 있었다 월남을 환상에 빠트려 내부에서 무너트린 것은 정부 대학 재야단체에 광범하게 침투한 간첩과 동조자들이였다 그수는 5만명에 달한다"  라고했다. 

월맹의 T-55 전차
월맹의 T-55 전차가 사이공 대통령궁을 뚫고 들어가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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