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과 김홍걸의 관계에서 드러난 광주사태 가해자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는 2020년 10월 14일 밤 늦게 김대중의 3남 김홍걸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 사실을 930MBC뉴스 윤수한 기자는 "검찰, '재산축소 신고' 김홍걸 의원 불구속 기소" 제하의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한다:

10억 원대 아파트 분양권 누락과 상가 지분 축소 등 재산을 축소 신고해 더불어민주당에서 제명된 김홍걸 의원이 결국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는 어젯밤 늦게 김 의원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MBC 2020.10.15).

    김홍걸은 그가 더불어민주당에서 기소된지 한 달도 채 못되어서 기소된 것이다. 조선비즈 김명지 기자는 9월 18일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만장일치로 그를 제명한 사실을 “민주당, 김홍걸 제명…DJ가 만든 당이 DJ아들 쫓아냈다” 제하의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한다:

더불어민주당이 18일 오후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부동산 투기 및 허위 재산신고 의혹을 받는 김홍걸 의원에 대한 제명을 의결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막내아들이자 '동교동계'를 상징하는 김 의원이 비리 의혹으로 아버지 정신을 계승한 당에서 쫓겨난 것이다 (조선비즈 2020.09.18).

    김홍걸은 직업이라고 말할 만한 직장 생활을 한 적이 없는데도 한국에 있는 재산이 100억이 넘는다고 한다. 그가 국회의원 재산신고에 등록한 재산만 67억원이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에 있는 그의 재산을 제외한 재산이다. 김대중의 세 아들 중 막내아들인 김홍걸의 재산규모가 이렇듯 엄청나다.

김홍길 의원의 문자

    숨긴 재산이 많은 김홍걸은 그가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것이 족쇄가 되어 재판에 넘겨지게 되었다. 그런데 김대중의 비자금 외에는 재산 형성과정이 설명이 되지 않는 김홍걸을 더불어민주당에 영입하여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준 인물은 다름아닌 문재인이었다.

    2015년에 문재인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인재영입위원장을 겸임하고 있었을 때 김홍걸을 영입하여 2016년 3월 1일에 더민주 국민통합위원장으로 선임한 후 함께 전라도 광주와 해남으로 여행을 떠났다.

문재인과 김홍길의 5.18묘지 참배

    위 사진에서 보듯이 문재인이 2016년 4월 8일에 김홍걸과 단 둘이서 5.18묘지에 참배하였을 때 수행 기자단의 숫자가 엄청 많았다. 문재인이 김홍걸과 함께 5.18묘지에서 참배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기자들을 불러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둘이서 조용히 참배하면 안 되었는가? 김대중의 아들과 함께 5.18묘지에서 참배하는 장면이 사진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되면 선거 때 전라도 표가 자기 표가 된다는 계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문재인은 김홍걸과 함께 참배한지 사흘쯤 지난 4월 11경 광주의 어느 여성들 모임에서 자기에게도 5.18유공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광주사태 때 광주가 아닌 서울에 있었으며, 5월 15일에 그가 인솔한 경희대 시위대가 남대문 인근에서 시민버스를 탈취하여 그 버스로 경찰을 깔아뭉개 살해한 사건의 주동자였을 뿐인데, 그것이 그가 5.18유공자로 인정받을 근거가 될 수 있었을까?

문제 많은 사람이 자기야말로 언재라도 당장 5.18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을 자격이 있는 인물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게시: 김대령 2016년 7월 6일 수요일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실이 연루된 작금의 옵티머스 펀드 금융사기 사건은 문재인이 노무현 정부 민정수석이었을 때 시작되어 2012년에 그 사건의 실체가 비로서 조금 드러났던 부산저축은행 대형금융비리 사건을 연상시킨다. 노사모 임원들로 구성된 부산저축은행 대주주들이 저지른 금융사기 사건 때 문재인의 경제공동체였던 박형선이 1980년 5월 광주사태 당시 광주사태 현장에 없었는데 어떻게 5∙18유공자가 될 수 있었는가? 광주사태 발생 훨씬 전부터, 즉 문재인이 해남 주민이었던 시절부터, 해남에서 농민운동권 조직을 키웠기 때문이다. 그런 세포 조직들이 해남에 있었기에 김대중이 1980년 봄에 ‘연청’을 조직하고 장남 김홍일에게 회장 감투를 줄 수 있었다. 김홍일이 왜 5∙18유공자인가? 만약 근거가 딱 하나 있다면 그 근거는 그의 연청 조직이 전라도 각 지역에서 광주로 몰려들어와 관공서 방화와 무기고 습격 등을 하며 무장봉기를 주도하였기 때문이다.

5∙18(오발) 유공자 무용담 Pp210-211

     박형선과 김현장 등 문재인과는 아주 막역한 사이였던 지인들이 해남과 광주를 오가며 조직을 키우던 시절 운동권 회동하였던 장소가 바로 문재인이 1979년에 8개월간 묵었던 해남 대흥사이다. 지난 2016년의 사기탄핵 몇 달전이었던 4월 19일에 “文, DJ 3남 김홍걸과 사시 공부했던 대흥사 거쳐 팽목항 방문…발언 내용 보니?” 제하의 기사가 서울신문에 실렸다. 그 후 사기탄핵으로 보궐대통령이 된 문재인은 자기와 함께 대흥사를 방문하였던 김홍걸을 4년 후인 2020년에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도록 밀어주었다.

    지난 2019년 7월 12일에는 문재인은 자신과 해남과의 인연을 이런 말로 연설하였다:

저는 1978년, 해남 대흥사에서 전남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때 주민등록을 옮기고, 예비군도 옮겨서 훈련을 받았으니 법적으로 한때 전남도민이었습니다. 그 시절 보고 겪었던 전남의 아름다운 자연과 정이 많은 인심은 제게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헤럴드경제 2019.07.12).

    문재인이 해남 대흥사에서 전남과 인연을 맺었다는 말은 이때 박형선을 그곳에서 만난 것이 노사모의 출발이었다는 말이다. 문재인이 해남에서 박형선을 알게 된 인연으로 그가 1982년에 노무현과 함께 부산에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고 처음으로 수임한 사건이 박형선이 청탁한 사건, 즉 해남의 반미주의자 김현장의 부산미문화원 방화 사건이다. 박형선이 문재인과 노무현에게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변호 의뢰를 한 것이 노사모 출발의 계기였다.

    문재인이 묵었던 대흥사 선방을 나중에 간첩 손성모가 해남의 광주사태 공작 거점으로 삼았다. 그 후 김대중 정부는 대흥사 앞을 5∙18사적지로 지정하였다. 광주에 가서 방위산업체 아세아자동차 공장을 습격하여 레커차 등 여러 대의 차량을 탈취한 해남주민들이 5월 21일 정오 무렵 해남읍에 도착하여 다음날 아침 다시 광주를 향해 출발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였다는 이유에서였다.

광주폭동 공작 장소였던 해남 대흥사

    해남 청소년 황성술이 레커차에 5명을 태우고 동곡교(하산교)를 주행하다가 추락하여 다섯 명이 레커차 안에 갇힌 채 하천에 수장된 사건의 배후에 해남 운동권 조직이, 그리고 그 정점에 김대중이 있었다.

    
※ 위의 글은 광주사태 40주년 기념 전자도서 5∙18(오발) 유공자 무용담 제4장 ∙ 시민군 교통사고 무용담 1.마. '해남 교통사고 유공자 황성술'에서 일부 발췌한 글입니다. 위의 중간에서 끊어진 내용은 5∙18(오발) 유공자 무용담 213페이지에서부터 계속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