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이명자는 "1980년과 1929년의 '광주'"에서 북한영화 "광주는 부른다"는 광주사태를 감안하여 제작된 영화임을 밝힌다
(이명자 2008, 150). 이 영화는 1929년 광주보고 학생들의 실제 역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광주사태 주동자들의 '무력 투쟁론'을
끼어넣은 픽션소설로 스토리를 진행시킨다. 즉, 등장인물의 복장만 1929년의 복장이고, 실제 이야기는 북한이 바라고 계획했던 대로의 광주사태
모티브로 진행된다. 이 영화는 1929년을 그리는 영화라기보다 북한 사가의 관점에서 1980년 광주의 분위기를 그려내는 영화이다. 이명자가
밝히듯이 "광주는 부른다"는 청중에게 5.18에 대한 북한의 사관을 주입시킬 목적으로 제작된 북한 정권의 프로파겐다 영화이다 (이명자
2008, 150-151). 이 영화는 납북된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제작한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제작자는 김정일이 바라는
프로파간다의 목적을 위해 역사적 사실이 아닌 허구적 사실로 스토리를 진행시켜야 했다. 신상옥 감독이 이 영화를 제작하였을 때 가장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으며, 이 영화 상영을 바로 코 앞에 두고 결사적인 북한 탈출을 하였다.
북한이 북한의 5.18 사관을 각종 출판물과 미디어로 프로파간다하고 있을 때 이 영화가 제작되었다. 김일성이 1989년 황석영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임을 위한 교향시"를 제작하게 하기 바로 3년 전에 "광주는 부른다"가 제작되었으며, 두 영화는 비슷한 스토리로 진행된다. 황석영의
북한판 5.18 영화에 "광주는 부른다"에서 따온 모티브가 있다. 북한군이 광주에서 시민군 복장으로 있었을 때 그들이 시민군이었는가? 옷만 다를
뿐 북한군의 본질은 그대로 있었다. 어떤 이는 광주에 북한군 군복 입은 사람을 못 보았으므로 간첩은 없었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북한군 군복 입은
간첩이 있는가? 간첩은 스님 복장, 시민군 복장, 대학생 복장, 심지어 경찰 복장을 입고 있었다. 영화 "광주는 부른다"도 복장만 1929년의
복장일 뿐 그 내용을 북한이 선전하는 5.18 이념이다. 영화 속의 등장인물이 1929년 복장을 입었으므로 5.18 테마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우기는 사람은 전혀 위장전술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다. 그때는 아직 북한 정부 입장에서 북한이 광주사태에 개입해 있었다는 것을 공적으로 노출할
때가 아니었다. 영화 "광주는 부른다"와 더불어 북한주민들은 서서히 북한의 광주사태 개입을 입소문으로 말할 수 있었고, 1991년 상영된 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와 더불어 이제 더 이상 북한의 광주사태 개입은 북한 주민들에게 숨겨진 비밀이 아니었다. 그때는 대남선전 전략을 위해서라도
북한의 광주사태 개입 사실은 꽁꽁 숨겨야 하는 비밀이었다. 그래서 위장전술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광주사태 때 전라국을 만들고 전라국이 독립하기 위해 국군과 투쟁하라고 선동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 선동을 누가 하였는가? 전두환이 경상도
군인들을 보내며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유언비어도 전라국을 만들라는 선동을 위해 필요하였다. 그 악성 유언비어는 광주시민
단독 작품이 아니라, 배후에 남파간첩 조직이 있었다. "전라국"을 만들라는 말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문자적으로는 전라도를
대한민국에서 분리하여 독립시키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북한의 적국이 아니라, 북한에 고분고분한 친북 정권을 수립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저 포스터를 다시 보라! 왜 영화 제목이 빨간 글씨로 "광주는 부른다"인가? 빨간 글씨는 공산주의 혁명을 상징한다. 이 영화는 1929년의
광주학생운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프로파간다 영화이다. 광주가 1920년대의 사람들을 부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화 상영 당시의
북한 인민군을 환영한다는 의미이다. 이 영화가 5.18 테마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우기는 이들은 아직도 프로파간다 영화는 실제 역사와
일치한다고 여기는 것인가? 이 영화 제작을 지시한 김정일은 한번도 광주학생운동 발생일을 북한의 국가기념일로서 기념하지 않았다. 김정일이 만든
국가기념일은 5월 18일이다. 5.18이 있었기에 광주 사건은 북한 프로파간다 매체의 중요한 테마이다.
실제 프로파간다 내용이 "광주는 부른다"이므로 영화 제목도 "광주학생운동"이 아니다. 광주가 누구를 부르는가? 영화 포스터에서 광주는 북한
인민군을 부른다. 북한 청년들이 인민군에 입대하여 광주로 가야 한다는 프로파간다는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전술을 하자고 교육시키는 영화이며, 그런
프로파간다를 위한 교육 영화는 결코 광주학생운동을 그린 영화일 수 없다. 이 영화는 5.18 테마를 부각시키기 위해 실제 역사를 왜곡한다.
그만큼 이 영화는 광주사태와 관련이 있다.
광주가 적화(赤化)를 상징하는 빨간 글씨로 씌어졌을 때 그 광주는 어떤 광주인가? 포스터의 인물은 학도이다. 따라서 이 포스터는
광주학도를 부른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광주학도가 이 포스터를 볼 때는 빨간 광주가 광주학도를 부른다는 의미가 된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 이 영화와 더불어 북한에 등장한 프로파간다 노래 "광주학도야 별 보러 가자"가 그 의미를 밝혀준다. 아래 동영상 3:15에서 한 탈북여성이 이 노래를 직접 부르면서 "광주학도야 별 보러 가자"라는
가사의 의미를 설명한다. 별은 김일성, 김정일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노래를 듣는 청중은 이 노래가사가 북한판 5.18 테마를 넌지시
담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이 노래에 5.18이란 단어가 안 들어가 있으니 광주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아니다. 이 노래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북한의 사관을 서사적으로 혹은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제주 4.3 사건을 제주 해녀라고, 5.18 옹호 운동권을
광주학도라고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광주학도는 전혀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광주학도가 아니다. 좁은 의미에서 5.18 시민군 넓은 의미에서
5.18 옹호 운동권이 광주학도이다. 영화 "광주는 부른다"가 상영되던 1980년대 중반부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장군을 보러 가자는 뜻으로
북한에서 애청되던 이 대남선전용 노래에서 광주학도는 1929년의 광주학도가 아니라, 오늘날의 남한 운동권을 지칭한다. 이 노래가, 이 영화가
5.18 테마와 관련이 없는가? 북한이 광주사태에 개입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표명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노래와 이 영화가 5.18 테마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직설적인 표현은 없되, 정치적인 프로파간다 감추어져 있다. 이렇듯, 영화 "광주는 부른다"는 5.18이란 단어를 쓰지
않은 5.18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본 북한 청중은 1929년의 광주와 1980년의 광주를 혼동하게 되며, 북한의 사관으로 광주를 인식하게
된다.
영화 "광주는 부른다"에서 주인공인 광주고보 학생 세일은 '무력투쟁론'에 확신을 가진다. 바로 이것이 광주사태 주동자들의
확신이었다. 남한에서의 사회 민주주의(즉, 북한식 인민민주주의)의 실현은 오로지 무력투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광주사태 주동자들의
확신이었다. 그리고 그 무력투쟁이 서울로 화산될 때 남침하려는 것이 광주사태 당시 북한의 전략이었으며, 그런 시각에서 1980년 5월의 광주의
분위기를 해석하게 하며, 광주에서 무력투쟁이 전개될 때가 광주가 북한군을 부르는 때라는 것이 이 영화가 청중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며, 위 영화
포스터에 함축되어 있는 테마이다.
북한의 광주사태 개입의 흔적 중의 하나가 위의 사진에서 보는 대로 북한의 거대건설장비 휘호가 "5.18청년호"라는 사실이다. 아직도 소를
이용하여 운송하는 북한에서는 이런 건설·운송장비는 북한에서 몇 안되는 장비일 것이다. 그런데, "5.18청년호"라는 명칭이 이 초거대 장비에
붙은 이유는 남한의 민주화를 김일성이 학수고대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전국적 민중봉기를 일으키는 것이 김일성의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5.18청년이란 어느 나라 청년을 말하는가? 만약 북한 청년을 의미한다면 위의 포스터에서 "광주는 부른다"의 대상은 북한 청년을 포함한
북한세력이었다.
그러면 왜 포스터에서 "광주는 부른다" 구호의 색깔이 붉은 색인가? 그 함축적 의미는 광주인민봉기가 적화통일의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이 포스터는 무엇을 커뮤니케이션하는가? 광주 학생 운동권이 북한을 부르고 있는 것처럼 인식되도록 제작되었을 것이다. 그 상징적
모델은 누구였을까? 두말할 나위 없이 이른바 친북세력, 좌익, 혹은 연방제 적화통일론자들이었다. 당시 북한 아나운서들의 멘트는
미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광주인민봉기가 일어났다는 것이었으며, 지금도 북한에서는 그런 반미사관이 주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