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자서전 영상 오디오북



0:00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들의 청와대 습격 막아낸 전두환
3:58 1968년 11월 대령 진급 후 육참모총장 수석부관으로 발령
4:58 1970년 11월 파월 백마부대 제29연대장으로 발령받음
14:08 1971년 이순자 여사가 연희동에 집을 지음
15:16 월남전에서 귀국 후 1971년 11월 15일 공수특전단 단장이 됨
17:35 1973년 준장으로 승진한 해에 윤필용 장군 사건이 터짐
26:44 1976년 3월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발탁됨
27:22 1978년 1월 23일 제1사단장에 임명됨
45:53 1979년 3월 3일 보안사령관으로 영전
46:20 대한뉴스 1968년 1월 21일 밤에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습격
49:47 대한뉴스 북괴가 미국 항공모함 푸에블로호 납북
50:44 천하 제1사단 군가

제3장 7화 군인을 천직으로 알고 사는 그 분을 뒷바라지 하며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대대 대대장으로 부임한 지 다섯 달째를 맞고 있 던 1968년 1월 21일 밤 한 무리의 수상한 자들이 청와대 입구인 자하문에 나타났다. 검문 때 그들은 야외훈련을 마치고 귀대하는 방첩대원이라고 신분을 밝혔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바로 비봉을 거쳐 하산해 자하문에 이른 북괴 특공조였다. 외투 속에 총기를 숨긴 그들이 자하문 고개를 넘을 때 서울은 이미 밤 10시의 고요함 속에 있었고 ‘청와대 특정지역’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까지 접근해 있었다. 그야말로 그들 최종 목표인 청와대 기습과 대한민국 대통령 암살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청와대 옆 청운동 노상에서 그들을 불러 세운 사람이 있었다. (이순자 자서전 151 페이지에서)

이순자 자서전 150~151쪽

   그날은 북한 무장간첩으로 추정되는 괴한들이 목격되었다는 신고에 따라 이미 전군에 내려졌던 비상령이 해제된 상태였다. 괴한들이 수색작전 에서도 발견되지 않자 북한으로 되돌아 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이 일요일이었음에도 그이가 지휘하는 30경비대는 비상근무를 유지하면서 특수훈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상황이 전달되면 60초 이내에 박격포로 조명탄을 발사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었다. 그이는 총성이 울렸다는 상황 보고를 받는 즉시 조명탄 발사를 명령했다. 그로부터 채 30초도 걸리지 않아 조명탄 제1탄이 발사되었다. 뒤를 이어 순식간에 제2탄과 제3탄이 날았다. 엄청난 빛을 발하는 조명탄이 터지자 한밤의 북한산 일대가 갑자기 대낮처럼 밝아졌다 특공조가 총을 쏜 것과 거의 동시에 터진 조명탄이었다. 그 조명탄 빛이 주는 충격에 전의를 상실한 특공조는 곧 산산히 흩어져 도주했다. 생포된 김신조가 청와대를 까부수러 왔다고 살기에 찬 어조로 말하던 기자회견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속에 남아 있다.

(이순자 자서전 152 페이지 중에서)
전두환 대령 가족 외식 사진, 이순자 자서전 152~153쪽

   다시 지휘관의 길로 돌아간 것이다. 임관 15년 째였다.

   1961년 당시 ‘월남’이라고 부르던 베트남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전쟁의 불길은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최장(最長)의 전쟁이었다. 우리나라도 1964년 이후 국군 파월이 계속되고 있어 나는 늘 불안했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는 군인’이기를 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남편이 한국군의 파병 상황을 그냥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아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가슴에 들어찬 근심으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내게 천진스럽도록 씩씩한 모습으로 손 한번 힘껏 흔들어주고는 베트남전장으로 떠나가버렸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불안감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는 첫 편지를 보내왔다.

(이순자 자서전 154 페이지 중에서)

한복 입은 전두환 자녀들, 이순자 자서전 154~155쪽

   베트남 출정 11개월 16일 만에 남편은 수많은 승전 성과를 안고 귀국했다. 정글의 열풍에 시커멓게 그을린 모습이었다. (이순자 자서전 157 페이지 중에서)

박정희 대통령 친필 편지, 이순자 자서전 156~157쪽

   월남전에서 귀국하고 일주일 후인 1971년 11월 15일, 남편은 공수특전 단 단장이 되어 고향과 같은 공수단으로 돌아갔다. 파월 백마연대시절 전쟁터에서 장병들과 생사를 함께하던 경험으로 장병들과의 일체감을 더욱 통절하게 느끼게 된 남편이었다. 특전단 단장이 된 후에도 그이는 장병들 과 함께 달리며 하나가 되고자 하는 노력을 늦추지 않았다. 10km 구보를 해도 예외 없이 참모들과 함께 맨 앞에서 뛰었고, 공중낙하 훈련 때도 예외 없이 가장 앞에서 날으는 1번기 비행기에서 첫 번째로 몸을 날려 낙하산을 폈다. (이순자 자서전 158~159 페이지 중에서)

공중낙하훈련하는 전두환, 이순자 자서전 158~159쪽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할까. 장성이 되었다는 기쁨과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당시 전군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윤필용 장군사건이 터졌다. 군 내 일부세력들에 의해 불충(不忠) 사건으로까지 사건이 급히 확대되어가고 있을 무렵, 남편은 자신이 지휘하고 있던 공수특전단을 북한의 124 군 부대나 특수 8군단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강한 부대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향해 훈련과 연구로 여념이 없었다. ‘천리행군’이란 이름의 장거리 행군훈련이 처음으로 개발된 것도 바로 이 연구에 의해서였다. (이순자 자서전 160~161 페이지 중에서)

이순자 자서전 160~161쪽

   베트남에서의 충격적인 패배를 목격했던 그분은 나라의 위기감을 온 몸으로 느끼며 돌아왔었다. 힘으로 지켜내지 못하는 자유이념의 우월함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이다. 월남과 월맹이 적으로 나뉘어져 전쟁을 치른다고는 해도 주민의 대부분이 내막적으로는 월맹과 연결이 있어, 피를 흘리며 낮 동안 싸워 간신히 점령을 하고 난 마을이 밤사이 월맹의 손아귀로 넘어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 그이가 목격한 월남전의 실상이었다. 자신들이 지켜내지 못하는 국토는 아무리 세계 열강들이 달려와 도와줘도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직접 가상위협에 대한 대비를 했었기 때문에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간신히 막아낼 수 있었던 1.21사태도 북괴의 도발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났던 섬뜩한 경험을 남편은 갖고 있었다. (이순자 자서전 162 페이지 중에서)

장병 가족들에게 장학금 주는 전두환 장군, 이순자 자서전 162~163쪽

   새로 주어진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라는 자리는 그이의 꿈, 즉 야전의 웅지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보직이어서 남편은 의아해했다. 이후 1977년 2월 남편은 소장으로 진급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78년 1월23일, 고대하던 야전으로의 귀향이 이루어졌다. 보병 제1사단장에 임명된 것이다. (이순자 자서전 165 페이지 중에서)

사격술 지도, 이순자 자서전 164~165쪽

   “이것이 천하제일사단이오.”
   천하제일 제1사단을 줄여서 ‘천하제일사단’. 다시 지휘봉을 잡자 의욕에 불타던 자신의 부대를 천하에서 제일 가는 부대로 만들겠다는 거창한 포부 속에 그이는 빠져 있었다. (이순자 자서전 167 페이지 중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장군, 이순자 자서전 166~167쪽

   북괴군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의 사단장이라는 자리는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불철주야의 자리였다. 철통 같은 경비로 철책선을 지켜야 했고, 만일의 경우 북괴의 도발이 있을 때는 가장 먼저 그들과 맞붙어 싸워 제압해야 하는 최전선의 부대였기 때문이다. 직접 발로 뛰며 사단의 일을 점검하던 그이는 천둥번개가 치고 폭설이 쏟아져내리는 날이면 직접 감시초소 소대장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곤 했다. 평상시에도 근무가 어려운 감시초소는 날씨가 험할 때는 극도로 고립된 근무상황이 아직 나이 어린 군인들에게는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그이는 잘 알고 있었다. (이순자 자서전 168 페이지 중에서)

이순자 자서전 168~169쪽

   그러나 장병들만이 사단을 떠났던 것은 아니다. 그이에게도 이별의 날이 다가와 이듬해 봄인 1979년 3월 3일, 자신의 자랑 ‘천하제일사단’과 작별해야 했다. 또 다른 임무가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보안사령관이라는 중책이었다. (이순자 자서전 174 페이지 중에서)

이순자 자서전 174~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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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의 감상평

천하의 일사단!! 멋져요~~~ 👏👏 무엇보다 리더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입니다. 가정에서 가장이나 부모의 역할, 교회의 목회자, 사회, 회사, 공공기관의 리더들, 특별히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 당시 저는 어렸던지라 관심도 없었고 후에 들은 얘기들 뿐인데 왜곡된 전두환대통령의 공사가 안타깝습니다. 이번 오디오북을 통해 많은 분들이 듣고 바로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담이지만 고교시절 지하문을 항상 지나쳐 다녔고 자하문터널도 생길 무렵이라 너무 익숙한데 그곳을 지켜주셨던 분들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 (JYP)


저는 전라도사람입니다. 오랜시간 역사교과서.언론을 통해 전두환대통령을 심하게 오해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문정권이후 역사공부를 다시 하면서 세뇌가 얼마나 무서운 독인지를 깨닫습니다.
전두환대통령과 제5공화국시절에 저는 초등학교.중학교를 다녔었는데 회상해보면 그 시절이 저에게도 가장 아름답고 즐겁던 시절이었습니다.
군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김일성회고록이 쿠팡에서 버젓이 판매되는 이 때.. 제3땅굴을 발견하고 간첩을 잡기위해 혼신을 다하던 1사단의 사단가가 그 어느 노래보다 감동적입니다. 그 시절의 윗세대 어르신들께도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최소원)


새삼잘듣고갑니다. 故전두환 대통령 국립묘지에 모셔라. (유튜브郎人.)


최고의 국가수호자. 반공 방첩 최고수훈. 국가수준을 국제적으로 올려놓으신 분. 충무공보다 더 모략 날조 당하신분. 목숨바쳐 일하신분. (김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