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자서전 영상 오디오북



제3장 4화 한강백사장에 내려앉은 낙하산을 바라보며


   다시 시작된 서울 생활에선 활기가 넘쳤다. 육군소령인 남편은 늘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하던 제1공수특전단 2대대장으로 부임했다. 특수전에 대한 정열이 남달랐던 남편은 제1공수특전단으로 돌아가자 그야말로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사기가 충천했다. 머리에 베레모를 쓰고 낙하산을 타면서도 위험 속에서 중요한 임무수행을 위해 자신을 허공 가운데로 내던진다는 그 극단의 용기가 군인 된 자로서의 희열을 안겨주는 것 같았다. (이순자 자서전 124 페이지에서)

공수특전단 낙하 훈련, 이순자 여사 자서전 124~125쪽

   그리고 다시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일 많이 하는 중령이 되게 도와주시오.”

   참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그 당부였다 일밖에 몰라 미안하다면서도 남편 은 결국 더 많이 일하는 것이 중령으로서의 자신의 존재이유임을 알고 있는 특전단 전사였다.

(이순자 자서전 126 페이지 중에서)
한강백사장, 낙하훈련, 이순자 여사 자서전 126~127쪽

   그곳에서 익힌 기술로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얼마간의 돈을 벌어 가계에 보탤 수 있었다. 물론 남편 몰래한 일이었다 편물기계를 벽장 속에 감춰두었다가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난 후 부리나케 꺼내 주문받은 가디건과 털실 속치마 등을 바삐 손 놀려 짜곤 하면서 푼돈이나마 차곡차곡 모이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몰랐었다. 남편의 퇴근이 늦는 날이나 야근을 하는 날에는 아예 밤 늦게까지도 많이 할 수 있었던 그 편물부업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하기에는 정말 그만이었다. 또 당시의 집들은 대부분이 연탄을 사용했기 때문에 몹시 추웠고 털실로 짠 물건의 수요가 제법 많아 일감도 끊이지 않았다. 솔직히 친정살이의 햇수가 넘어갈수록 너무 오래 도움을 받고 사는 것도 늘 죄송했고 그래서 남편도 나도 어떻게든 하루빨리 자립해 나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저축에 매달린 나날이었다. (이순자 자서전 128 페이지 중에서)

전두환의 자녀 전재국 전효선, 이순자 여사 자서전 128~129쪽

   정말 오래도 계속된 친정살이였다. 좁쌀 서 되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하 지 말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도 있지만 돌아보면 안채의 친정 부모님과 사랑채의 사위 사이에 오간 미덕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정겹게 흘러간 세월이었다. 그 긴 세월이 있었으므로 우리도 이제는 그 따뜻한 보호막을 떠 나 홀로 설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고스란히 모은 남편의 박봉에 부모님의 인내가 쌓여 만들어진 기적, 그것이 아버지가 내어 주신 그 통장의 의미였다. 1966년 5월의 추억이다. (이순자 자서전 130 페이지 중에서)

전두환 비자금, 전두환 추징금, 이순자 여사 자서전 130~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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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의 감상평

이순자 여사님의 서지학적 표현력은 어떤 시인도 놀 라지 않을수 없는 아름다운 문장과 그 깊이는 상상할수조차 없는 해안과 넓은 마음 씨의 사임당과도 같은 분이신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공윤형)


전두한 대통령님 생각하면 언제나 존경심이 든다 ㅡ그리고 ㅡ위대하고 존경받아야할 보석같은 우리 대통령님을 좌파들이 탄압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낀다.
ㅡ진실의 역사는 말한다.
ㅡ전두한 대통령님은 위기의 나라를 두번이나 구해냈다고ㅡ 또ㅡ88올림픽도 잘성공시켜서 자유대한민국을 부흥시켰다 ㅡ또 ㅡ국방과 안보도 강화시켜 나라를 잘 지켜내신 전두한 대통령님을 나는 존경한다. (재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