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자서전 영상 오디오북



제3장 3화 뒤늦은 신접살림


   열차가 종착역 광주에 들어서자 친지 한 사람 없는 낯선 도시에서의 새 생활이 시작됐다. 광주의 8월은 더웠다. 우선 여관에 들러 하룻밤을 지내고 이튿날 방을 구하러 시내로 나갔다. 운 좋게 광주 계림동 계림시장 근처에서 마음에 드는 두 칸짜리 월세방을 얻을 수 있었다. 보병학교가 있는 상무대로부터는 약간 먼 거리였다.

   “조용해서 공부하기에는 안성맞춤이군.” (이순자 자서전 116 페이지에서)

이순자 여사 자서전 116~117쪽

   새해가 되자 남편은 매우 좋은 성적으로 보병학교 고등군사반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곧바로 마침 25사단 72연대장으로 나가 있던 윤필용 대령 으로부터 대대장 근무요청이 있었다. 전방근무를 원하던 남편은 떨 듯이 기뻐했다. 윤 대령은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보좌관을 맡았던 남편의 전직 상관이기도 했다. 전방으로 떠나기 전 우리 부부는 박 의장을 찾아뵙기로 했다. 광주로 내려온 후에도 계속되던 박 의장의 애정어린 격려에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박 의장은 광주에 내려올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광주보병학교 학생인 그이를 잊지 않고 불러주셨고 직접 만나 격려해주시곤 했다. 그뿐 아니라 몇 번인가는 광주로 생활비까지 내려 보내주며 묵묵한 액정을 보여주어 객지 생활을 하던 우리 내외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주셨다.

(이순자 자서전 118 페이지 중에서)
이순자 여사 자서전 118~119쪽

   육군대학은 육군에서 운영하는 군사학교 중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입 교 자격도 엄격해서 임관 15년 이내의 장교 중 군복무 성적과 군 경력이 우수한 사람들만이 선발됐다. 연구과정도 고급장교뿐 아니라 장군이 된 후에까지도 필요한 과목들로 강의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육군 대학에서의 성적은 각 단계의 진급심사에 평가 자료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연히 매일 밤 진해 관사의 함석동 집집마다 밤늦도록 불빛이 꺼 지지 않았다. 공부도 마치 전투하듯 맹렬히 하던 육대장교들의 치열한 경쟁이 그렇게 진해의 여름 밤을 달궜다. (이순자 자서전 120 페이지 중에서)

전두환 아들 전재용, 전두환 이순자 가족, 이순자 여사 자서전 120~121쪽

   할 수 없이 이모님이 먼저 올라가서 두 집 김장을 하시기로 하고 상경하 시던 날 정오열차를 타고 떠나신 이모님을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진통이 시작되었다. 숨 쉴 사이도 없이 급작스럽게 몰려오는 진통이었다. 길가에 주저앉은 채 잠시 참다가 진통 간격이 좁아지는 것을 느끼고는 길에서 출산할지도 모른다 싶어 정신없이 집을 향해 달렸다. 평소 관사에서 진해역이 도보로 가능한 거리이긴 했지만 그날 내가 대체 어떻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진땀이 난다. 산파가 달려오고 두 손을 어머니와 남편에게 잡힌 체 나는 새 생명의 탄생을 기다렸다. (이순자 자서전 122 페이지 중에서)

육군대학, 장교 부인, 김장 담구기, 이순자 여사 자서전 122~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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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의 감상평

이순자 여사님의 필력은 너무 섬세하고 아름다운 달콤한 표현력에 빨려 드는듯한 느낌과 어떤시인 보다 감동과 여사님의 존경심과 경의로운 세심한 문장려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공윤형)


마치 이순자 여사의 목소리 같습니다. 글쓴이의 마음을 너무 잘 전달해 주시는 낭독해 주시는 분께 감사 드립니다. (포시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