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자서전 영상 오디오북
1959년 6월 13일 그이와 나는 아침 길을 서둘러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육 군 공수부대에 근무하고 있던 남편은 다섯 달 과정의 심리전(psychological warfare) 교육을 이수하기 위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포트 브랙 (Fort Bragg) 기지로 떠나게 된 것이다. 결혼 후 꼭 다섯 달만의 일이었다 불안한 내 마음을 닮은 듯 하늘엔 마치 거친 붓으로 대충 그려 놓은 듯한 구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함께 떠나게 될 노태우 대위 부부도 곧이어 비행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보름 전 갓 결혼한 신혼 중의 신혼이었다 경북여고 교복을 입고 있던 여고시절부터 자주 봐왔던 노 대위 부인은 보름 전 결혼식에서 봤을 때보다도 한결 성숙해 보였다.`노태우 대위 외에 육완식, 이영진, 신규환 중위 등 동행할 장교들도 도착했다. (이순자 자서전 94 페이지에서)
사랑하는 아내 순자에게
당신을 떠난 지 오늘이 꼭 열흘째 되는 날이건만 나에게는 마치 십 년 지난 것 같소. 나는 지금 B80이란 열차의 독방에서 마치 일류귀족이라도 된 양 열차의 진동에 몸을 흔들리며 워싱턴을 향하고 있소. 무엇보다 애타게 내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을 당신에게 내 목소리를 전하고 싶어 열차 속에서 이렇게 펜을 들었소. 창밖은 가도가도 끝없는 대평원이오. 우거진 숲, 그림같이 다듬어진 잔디, 이곳은 참 부러운 나라요. 하지만 무엇을 보든 당신 생각뿐, 효창공원의 수줍던 시절아 그립소. 이 넓은 대륙과 우리 강산을 비교하니 내 강산의 처지에 저절로 한숨이 나오.
(이순자 자서전 96~97 페이지 중에서)
그 여행기 속엔 난생 처음 하이웨이를 목격한 한국장교, 미국인들이 매 일 마시는 우유를 막걸리로 착각한 1959년 당시 한국 ‘엘리트 장교’의 문 화충격 스케치들이 적혀 있었다. 서울에서 분유밖엔 구경 못했던 그이가 카페테리아에서 아침식사 때마다 장교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우유를 막 걸리로 착각했다거나 처음 마셔본 요거트의 신맛이, 부패해서 냄새가 나 는 것으로 알고 버렸다는 에피소드는 당시 한국인의 생활수준을 짐작케 한다. 더구나 그이는 그 첫 유학을 위해 도착한 오산 미군비행장에서 난생 처음으로 수세식 화장실을 경험했었다. 미군 군용기에 실려 미국의 재정 지원으로 군사 엘리트교육을 받으러 떠나는 1959년 당시 한국장교들의 숨김없는 모습들이다. (이순자 자서전 98 페이지 중에서)
처음 느껴보는 뱃속 태아의 움직임에 신기해하는 사이 어느덧 5개월이 홀러 그이의 귀국일이 다가왔다. 출산 예정일이 오늘 내일 하던 남산만한 배였지만 다행히 우리 아가는 하루를 더 기다려주어 내가 그리운 남편을 만나러 공항까지 나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당시 김포 가는 길은 자동차 두 대가 겨우 교행할 수 있는 좁은 길이었다. 오래되어 낡고 파손된 아스팔트길은 군데군데 심하게 패여 있었다. 가회동을 출발해 김포에 한 번 다녀오고 나면 난 차멀미가 심해 지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이순자 자서전 100 페이지 중에서)
이듬해인 1960년 7월 4일, 또다시 남편의 미국행이 결정돼 우리는 김포 공항으로 갔다. 이번 유학은 특수전의 정예코스로 알려진 포트 베닝(Fort Benning) 미 육군보병학교 레인저훈련과정(ranger course)을 수료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조지아 주에 있는 보병학교의 특수전 과정은 훈련의 극단성과 강도 때문에 미국군인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레인저’라고 불려질 정 도였다. 독사와 맹수가 들끓는 플로리다 늪지는 물론 나무도 풀도 없는 사막에 내던져져 뱀을 잡아먹고 선인장을 씹어 수분을 보충하는 지옥훈련 말이다.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극단의 그 혹독한 훈련으로 교육과정 중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순자 자서전 102 페이지 중에서)
다시 미 대륙과 한반도 사이를 수많은 편지들이 오고 갔다. 나는 매일 육아일기를 적어 보냈고 남편에게선 자세한 훈련일기가 도착했다.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최고의 특전요원을 길러낸다는 포트 베닝과 특수전에 대한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되었다. 그곳에서 남편은 매일 매일 강도 높은 위험천만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
"어제는 눈을 가린 채 총을 들고 다이빙대에서 강으로 뛰어내린 후 다시 헤엄쳐나오는 테스트에 합격했소."
(이순자 자서전 104 페이지 중에서)
남편은 담담하게 그날그날의 일과를 적어 보냈고 그 내용을 읽을 때마다 내 가슴은 예외없이 철렁 내려앉았다. 듣는 것마다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위험스런 상황들 더구나 특별한 안전장치도 없는 조건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상황들이었다. 그런데도 남편은 불안에 떠는 내 마음을 모르는 지 8주간의 극심한 유격훈련 과정을 수료한 후 다시 레인저 과정 중에서도 가장 고난도의 과정인 패스파인더(Pathfinder) 과정을 추가로 선택했다는 소식을 자랑스럽게 전해왔다. 고도로 훈련된 소수의 정예요원들이 먼저 목숨을 걸고 적지에 침투해 전투여건을 조성한 다음, 유격대원을 안내하는 과정이 바로 패스파인더라고 했다. (이순자 자서전 106 페이지 중에서)
이듬해 봄 1961년 5월 그분은 육군본부 특전감실로부터 ROTC 창단준비위원으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순자 자서전 109 페이지 중에서)
읽고 싶었던 책이었습니다. 이순자 여사의 필력이 매우 자연스럽고 솔직하며 세세합니다. 50년대말 60년대 초 우리나라 사정을 생생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배석호)
국군의 날에 귀한 영상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국군의 날"행사에서 울려퍼진 "멸공의 횃불"을 모든 언론들이 "승리의 횃불"이라 명명했던군요. "멸공"이 그렇게 두려운지... 군대다녀온 모든 대한민국국민들을 우습게 보는것인지.. 마지막 엔딩곡 "멸공의 횃불 "이 오디오북에 너무 잘 어울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