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자서전 영상 오디오북


제1장 3화 '사랑으로'



   여고시절 내내 그토록 공부에 여념이 없던 내가 언제부터 그이를 연인으로 느끼기 시작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분명한 것은 다만 그이가 육군사관학교가 서울로 이주한 후에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청파동 집 대문의 초인종을 눌렀다는 사실이다. 전 생도는 우리 형제들에게는 여전히 ‘아저씨’ 같은. 또 내겐 ‘친척 오빠 같은 정겨운 사람이 되어갔다. 전 생도 역시 나를 가족처럼 스스럼없이 대했다. (이순자 자서전 39페이지에서)

이순자 여사 자서전 38~39쪽

   언제부터였을까. 저녁이 되어 전 생도가 육사로 돌아갈 때면 우리가 함께 전차정류장으로 나가는 것이 조금씩 당연한 일로 되어갔다. 정류장에 서는 또 무슨 얘기가 그렇게 많은지 좀처럼 하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 몇 번이고 동대문행 전차를 놓쳐버리곤 했다. 그 시절 그 다정한 전차는 우리를 싣고 갈월동 쌍굴다리 앞을 지나 서울역으로, 그리고 종로의 그 길고 아름다운 대로를 통과해 동대문에 이르곤 했다. 막상 차가 도착해도 동대문까지만 가자며 함께 전차를 탔고 또 동대문역에 도착한 후에도 우리는 어느새 함께 청량리행 전차 속에 앉아 있었다. 청량리역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정말 종착역이어서 그곳에서는 반드시 돌아서야 했지만 전 생도는 늦은 밤에 절대 혼자 보낼 수 없다”며 기사도정신을 발휘해 예외 없이 다시 함께 동대문행 열차에 오르곤 했다. (이순자 자서전 40 페이지 중에서)

이순자 여사 자서전 40~41쪽

   내겐 마치 성인식과도 같았던 이화여대 입학식이 있은 후 그와 나는 더욱 가까워졌다. 그는 서울을 떠나 여러 임지를 옮겨 다니면서도 틈만 나 민 우리 청파동 식구들에게 와주었다. 야간 완행열차에 실려 밤새도록 선 채로 견뎌야 하는데도 광주에서 송정리, 또 송정리에서 서울로 달려오는 그 고단한 여행을 언제나 주저하지 않았다. 밤새 달린 열차가 서울에 닿으면 시간은 으례 이른 새벽이었다. 예의나 사람 간의 도리에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그는 아무리 궂은 날씨나 여행으로 피곤해도 식구들에게 폐 끼치는 것을 꺼려해 벤치도 없는 효창공원에서 아침이 되어서야 막 도착한 사람처럼 청파동 집 대문을 두드리곤 했다. (이순자 자서전 43 페이지에서)

이순자 여사 자서전 42~43쪽

   우리의 만남은 항상 시간에 쫓기면서 이루어졌고 그래서 더욱 애틋했다. 시간을 내어 만난다고 해도 학원 저녁수업이 먼저 끝난 내가 그이의 영어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려 함께 동대문행 전차에 올라 얘기를 나누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어쩌다 여유가 생겨 중국집이나 영화관에 들르는 날은 마지막 버스마저 놓쳐버려 그는 육사가 있는 먼 태릉까지 걸어가기 일쑤였다. 그러나 한 도시의 하늘 아래서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며, 함께 숨쉬며 함께 미래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난 한없이 황홀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산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 시절 난 일기 속에 그 사랑의 기쁨을 그렇게 적곤 했다. (이순자 자서전 45 페이지 중에서)

이순자 여사 자서전 44~45쪽

   그런데 입원한 지 9일 만에 퇴원한 내게 느닷없이 낯선 사람을 통해 절교편지가 전달된 것이다 절교 편지 속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헤어지자."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헤어지자니 말이다. 무슨 악몽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난 충격과 당황 속에 혼자 울기만 하다가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미처 회복되지 않아 허리를 펴기도 힘든 몸을 이끌고 그를 찾아 태릉으로 갔다. 그리고는 면회 신청을 했다. 하루 해가 다 넘어가도록 그이는 끝내 면회실에 나타나주지 않았다. 며칠을 겨우 참고 지내다 다시 찾아간 나는 그가 그 사이 전속해 버려 더 이상 태릉에 근무하고 있지 않다는 어이없는 소식만을 들었다. 무슨 일을 결심하면 무섭도록 완벽하게 해버리는 그의 성격대로였다. 찾아도 소용없으니 미련도 갖지 말라는 그 단호한 암시 앞에서 난 그가 정말 헤어지려는 결심을 한 것이 분명하다는 끔찍한 사실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자 자서전 46 페이지 중에서)

이순자 여사 자서전 46~47쪽

   절망스럽도록 단호한 어조였다. 내가 간신히 ‘‘무슨 사정인지는 몰라도 절대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뜻의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이는 한숨 속에서 입을 열었다. “오래도록 사귀어 정이 깊이 든 우리가 헤어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더구나 넌 아직 어리니까 더욱 힘들었을 거야. 그러나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니까 내 말을 잘 듣고 이해해주면 좋겠다.” 철없는 동생을 타이르듯 그가 말했다.
   “사랑은 감정만 갖고 되는 일이 아니고 책임이고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어. 임관 후, 군 생활을 하면서 나는 육사를 졸업하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현실과 직면하게 되면서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지. (이순자 자서전 48 페이지 중에서)

이순자 여사 자서전 48~49쪽

   순자는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야. 나같이 무능한 사람만 아니면 훨씬 더 능력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어. 그동안 우리는 순진하게 사랑하면 다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아. 사랑한다면서 물만 먹고 살 수 있겠어? 내가 진정 너를 사랑한다면 너를 이런 지옥 같은 삶으로 끌어들일 것이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거야. 몰랐을 때는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이런 사정을 분명하게 깨달은 이상 너에게 사랑하니까 함께 있자고 할 수가 없는 거야. 서로가 불행해질 뿐이니까.”
   그이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내게선 도리어 감격의 눈물이 흘렀다. (이순자 자서전 50 페이지 중에서)

이순자 여사 자서전 50~51쪽


   아홉 살밖에 안된 어린 나이에 낯설고 물선 만주로 옮겨가 살 수밖에 없었.으며, 적령기에 학교도 기지 못하고 신문배달을 해야 했던 어린시절. 열일곱 살이 되어서야 중학생이 될 수 있었던 그 이가 천신만고 끝에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후 화장실에서 밤마다 몰래 공부하며 흘렀던 눈물 등 자신이 임관한 후 겪어내고 있는 어려움들을 나와 헤어지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극적 이라고 느껴질 만큼 처연한 목소리고 들려주었지만 그 시간 나는 이미. 나를 향한 사랑과 배려에 감동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나는 그이를 다시는 놓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과 흥분 속에서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우리 다시 시작해봐요. 나는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어요.”
   그날 내 나이 스무 살이었다 (이순자 자서전 52 페이지 중에서)

이순자 여사 자서전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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