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유공자 총에 맞은 5.18 유공자


    5.18 사기꾼들이 해마다 5월이면 흥행으로 하는 거짓말이 1980년 5월 27일 새벽에 박영순이 가두방송하였다는 거짓말이다. 금년 2019년의 광주사태 기념식 때는 문재인이 박영순을 위로하는 쇼까지 하면서 그런 거짓말을 극대화하였던바, 아이뉴스 24는 그런 사실을 이렇게 간략하게 보도한다:
    5·18을 기억하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 치유하는 내용을 담은 기념공연에서는 5월 항쟁 당시 가두방송을 했던 박영순씨와 최후의 항전을 하다 총상을 입고 사망한 고등학생 시민군 고 안종필 군 어머니 이정님 여사의 사연이 소개됐다 (아이뉴스 2019.05.18)

    박영순은 문재인의 이런 거짓말 쇼에 왜 침묵하는가? 5·18 사기꾼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박영순이 그 날 새벽 언제 어디서 가두방송을 하였다는 거냐? 5월 27일 새벽에 광주시민들이 모두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으며,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가두방송을 하였더는 거냐? 2016년 4월에 광주에 와서 자기에게 5.18 유공자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 문재인은 5월의 광주폭동 전야제에 참석하여 자기는 5월 27일 새벽에 가두방송한 것이 아니었다고 증언한 것을 들었다. 바로 3년 전에 그 증언을 듣고서도 문재인이 2019년 5.18 기념공연에 박영순과 더불어 주연으로 등장해 가두방송 쇼를 한 것은 그의 치매증을 의심케 한다.

    박영순은 그때 송원공업전문대 보육과 2학년 여학생이었다. 당시에는 도청 안에는 옥내방송 스피커와 옥외방송 스피커가 있었는데, 옥외방송 스피커는 광주시 전역에서 소리가 크게 들리는 민방위용 시스템이었다. 즉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때는 도청에 동서남북 방향으로 빨간색 대형 스피커들이 있었다. 도청으로 불법으로 점거한 무장난동자들과 함께 있었던 박영순은 도청 본관 건물 안에서 민방위용 스피커로 방송하였다 (박영순 2016). 그럼에도 지금껏 근 사십년간 사기꾼들은 박영순이 민방위용 옥외스피커로 방송을 한 것을 소재로 박영순이 차를 타고 다니며 가두방송하였다는 거짓말로 5.18 흥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영순이 이렇게 방송하였다.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도청 안으로 나오셔서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을 살려주십시오. 우리는 도청을 끝까지 사수할 것입니다. 우리 형제 자매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박영순이 청승 떠는 음성으로 방송하였다. 그러나 그 말은 거짓으로 선동하는 말이었다. 도청 안에는 무장난동자들만 있었고, 아직 계엄군이 도착하기 몇 시간 전이었는데 무장난동자들 중에서 누가 그녀의 형제자매들이었으며, 누가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었는가? 박영순은 자기가 본 것을 방송한 것이 아니라, 한 사기꾼이 쪽지에 써준 그대로 방송하였다. 그런데 박영순은 그 쪽지 내용이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을 판단할 지각 능력조차 없는 여자였는가?

    사기꾼들은 말을 거꾸로 한다. 정상적인 한국인이라면 "도청 안으로 들어오셔서"라고 말하지 "도청 안으로 나오셔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기꾼들의 광주사태 선동 언어는 이렇듯 단언 한마디 한마디에 그 티가 난다.

    박영순은 자기가 본 것을 방송한 것이 아니라, 김종배가 쪽지에 써준 대로 방송하였다. 그러면 김종배가 광주시민들의 생명을 아끼기 위해 그렇게 선동적인 방송을 하라고 시켰는가? 아니다. 김종배가 한밤 중에 광주시민들을 깨워 도청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였는데, 그 도청 안은 어떤 곳이었는가? 그곳은 무장난동자들이 8톤이 넘는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장치를 한 곳,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 정말로 형제자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소형 핵폭탄의 폭발력을 가진 엄청난 분량의 다이너마이트들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곳으로 형제자매를 초청하지 않는다.

    김종배가 박영순에게 "도청 안으로 나오셔서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을 살려주십시오."라고 방송하라고 시켰을 때는 정말로 (도청을 불법 점거하고 있었던) 무장난동자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었던 때가 아니라, 사실 김종배 본인도 아직 계엄군이 광주에 진입할 지 여부를 모르고 있었던 때였다. 김종배가 26일 밤 11시 50분에 전화로 중앙청 상황실을 불러내 “만약 계엄군이 들어오면 우리는 다이너마이트로 자폭한다”고 말했다 (황석영 1985, 236). 그때 정말로 시민군 지도부는 도청 시민군과 더불어 다이너마이트로 집단 자폭할 심산이었음을 김종배 위원장은 이렇게 증언한다:

    그날 낮에 정시채 부지사가 허규정과 나를 불러 "계엄군이 곧 진주할 텐데 내가 미리 귀뜸해줄 테니까 학생들은 모두 빠져나가라"고 했다. 우리는 "만약 계엄군이 진주하면 도청 지하실에 있는 폭약을 폭파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도청 지하실의 폭약은 계엄군 프락치에 의해 이미 뇌관이 제거된 상태였다 (김종배 1989).

    5.18 유공자 김종배의 공적은 두가지이다. 그의 첫번째 공적은 "도청 지하실에 있는 폭약을 폭파시키겠다"고 한 것이요, 두번째 공적은 그 말을 한 입의 침이 채마르기도 전에 박영순에게 광주시민들을 도청 안으로 불러들이는 선동 방송을 하도록 시킨 것이다. 만약 도청 지하실에 있는 폭약을 폭파시킬 것이라면 광주시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려야 할 일인데, 왜 광주시민들을 그 위험한 곳으로 불러들이려 하였는가? 이것은 김종배가 대답해 주어야 할 문제이다.

    이 글은 지금 작성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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