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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연구 추천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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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사태 유언비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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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사태 사진사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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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 가해자 시민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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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청문회 동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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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와 최근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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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광주사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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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침투한 300 명의 불순세력과
북한군 300 명
"평양은 망명을 꿈꾼다"라는 제목의 그의 저서에서 강명도는
광주사태 당시까지만 해도 전두환은 전혀 북한에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었음을 이렇게 서술한다:
<<"광주에서 전쟁이 터졌다"
1980년 5월 18일 북한 주민들은 깜짝 놀랐다. 남조선에서 계엄군과 학생 시위대가 충돌해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일본 조총련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비디오 테이프를 확보한 중앙
TV가 매일 그 테이프를 방영한 것이다. (....) 또 복면을 쓴 시민군이 탈취한 계엄군의 지프를
타고 시가지를 달려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노동신문』은 해설을 통해 학생시위가 광주사태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공수부대가 계엄군으로 출동,
엄청난 사태로 확대됐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공수부대 투입을 지시한 사람이 전두환이라고
보도했다. 내가 점두환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노동신문』은 전두환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238쪽,
http://study21.org/518/document/nk-kang.htm)
5.18측 및 유언비어에 편승하는 미디어는 마치 광주사태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유명
인물이었던 것처럼 착각하도록 유도해 왔다. 그러나 만약 그가 남한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면 그
누구보다도 고급 정보를 갖고 있었던 강명도가 모를 리 있었을까? 정치 시사 분야의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던 김동길 교수조차도 1980년 6월 이전에는 전두환이란 이름 석자를 들어본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 광주사태 당시 광주에 투입되었던 계엄군은 전두환이 누군지 알았을까? 그 사실이
궁금하여 역사학도는 2007.07.11 13:05 에 한동석 중위에게 다음과같이 질문하였다:
<<먼저 광주에서 투사회보라는 이름의 벽보 혹은 삐라들을 통해서 5월 18일부터 전두환이란 이름을
광주시민들이 처음 듣게 되는데요. 사실 그 전에는 대부분의 국민은 전두환이란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민간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름이었지요. 한동석님은
당시 소대장의 위치에서 전두환이란 이름을 들어 보셨었는지요.>>
이 질문에 대해 2007.07.11 15:47 에 한동석 중위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전혀 들어보지 못했읍니다. 도청 재탈환(5/27) 된 후에 2-3일 동안 시내 무기회수 작전에
부대의 간부(당시호칭: 하사관과 장교) 1명과 예비군 중대장(사복차림)과 사복 형사 ,3인조로
구성하여 어디인지 지역명은 잘 모르지만 우범지역이었던 것은 확실함. 이미 모두 도주한 상태여서 젊은
남성들은 만나보기 힘들었읍니다. 그리고 시내는 정리정돈이 되어 있는 상태였으나,시내를 조금 벗어난
지역에는 방화된 차량등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처참했던 상황들을 예상할 수가 있었읍니다.
그리고, 6월 초에 구례에 있는 예비군 관리대에 보직 명령을 받고 전출되어 구례읍내에서
영외거주(하숙) 하면서 하숙집 TV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장 서리(?) 자격으로 연설하는 모습을
처음으로보았읍니다. 그전에는 전혀 "전두환"이란 세글자를 보지도 못했읍니다.>> (http://blog.daum.net/sionvoice/10357845
)
그러면 폭동진압작전에 동원되었던 공수부대원들은 전두환이 누군지 알았는가? 하급 장교들에게조차
그 이름은 아직 생소한 이름이었음을 당시 3공수여단 12대대 소속 김치년씨는 이렇게
증언한다: "구호들 가운데 나와 같은 하급장병들에게는 생소한 이름도 있었다. 다름
아닌「전두환」이었다...그가 우리 부대를 지휘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더구나 지휘계통상에 있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이것은 진압군인들과 전두환씨와의 관계설정이 현실적으로는 이만큼 거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http://cafe.daum.net/518cafe/8yGb/80
)
그러면 광주시민군은 전두환이 누군지 알고 있었는가? 아니다. 대다수의 시민군은 그가 학생인지
공무원인지 서울 사람인지 광주 사람인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나이 24세로
대입재수생이었던 시민군 이수범은 "우리는 전두환이 어떻게 생긴 놈인지도 몰랐는데 항쟁이 끝나고 나니
대통령으로 출마를 하네 어쩌네 하면서 난리를 떨었다. 그제야 그놈이 어떤 놈인지 알았다."고 증언한다
(시민군
이수범의 증언 중 네번째 작은 제목 "진상이 밝혀지기를 간절히 바라" 이하.
시민군 최인영도 "우리는 이곳에서 주로 '전두환은 물러가라', '전두환을 찢어죽이자'는 구호를
외쳤는데, 나는 전두환이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나름대로 '광주사태'비극을 일으킨 장본인일 것이라고
단정지으며 목청껏 외쳤다." 고 증언한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3_510.html
에서 세번째 작은 제목 "남평 무기고를 털다"의 끝단락).
시민군 김행주도 "5·18 당시도 전두환이 누군지도 몰랐었다."고 증언하며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3_619.html
, 시민군 김용균도 "특히 수사관들은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는 오히려
'전두환'이가 누구냐고 되물었다. 사실 나는 전두환이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수사관은 전두환의
이름 대신에 000으로 표시했다."라고 증언한다 (http://cafe.daum.net/518cafe/8yGb/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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