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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26일 헤드라인 뉴스  
US doctors treating an Afghan civilian caught in the blast (Picture courtesy: US Air Force)
Nine people die in a suicide attack in Afghanistan which the Taleban say targeted US Vice-President Dick Cheney.

 
India's governing Congress Party suffers a setback in state elections in Punjab and Uttaranchal.
The ambassadors of Italy and the US are slightly injured as they are caught up in a mortar attack in Sri La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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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뉴스 토픽 BBC 뉴스 2-26/ 세르비아 학살 누명 벗겨준 판결에 실망한 보스니아 회교도들
시사해설 및 칼럼   광주사태와 노무현의 위험한 안보관

   헤이그에서 열린 2007년 2월 26일의 재판은 세르비아에 몹시 중요한 재판이었다.  이십 만명 학살의 오명을 쓰고 살기도 창피한 일이지만 그 누명을 벗지 못하면 막대한 보상금을 보스니아에 지불해야 할 뿐만 아니라, E.U.에 가입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재판은 13:2로 배심원들이 압도적으로 세르비아 손을 들어줌으로 학살 누명을 벗게 되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보스니아 사태를 막지 못한 것이 학살이라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세르비아 수도 벨그레이드(Belgrade) 정부는 보스니아 내전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유엔 법정 판결에 실망한 보스니아 회교도들의 반응이 좀 의외이다.  그들은 "지금도 무덤을 파고 있다.  무덤을 파니 시체가 있다.  정말이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즉, 사람이 죽었으니 그것이 세르비아가 보스니아 사람들을 학살한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엔 법정에서는 죽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가해자가 세르비아라는 사실이 성립되지 못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1993년경의 보스니아 전쟁은 이미 우리 기억 속에서 희미하기에 우리는 그때 그 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1980년 광주사태의 기억은 우리에게 여전히 선명하다.  그래서 여전히 5.18측이 전혀 사실이 성립될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대하여 여러가지 지적을 할 수 있다.  거짓 주장 중의 하나가 5월 18일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 거짓 주장을 위해 사진 날자 속임수를 쓰고 있다.

   5.18 옹호론자들은 5월 16일 전남대 정문 앞에서 기동경찰과 전남대생들이 대치한 장면을 공수부대와 전남대생이 대치한 장면인 것처럼 종종 주장한다.  그러나,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이 주동하였던 5월 16일 시위와 김대중의 미등록 정당 국민연합 사무총장 윤상원이 주동하였던 5월 18일 시위는 전혀 다르다.  일요일이었던 5월 18일 전남대 정문 앞에는 단 7명의 공수부대원만 서 있었다.  

   5월 18일 오전 9시경 윤상원이 인솔하여온 무리가 모두 학생들이었다는 증거가 있는가?  전남대는 평일에는 시위하다가 일요일에 수업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그리고, 윤상원이 인솔하여온 무리의 가방에는 돌멩이가 가득 들어있었는데, 전남대는 돌멩이를 교재로 사용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처음 오십 명이, 그리고 곧 이백 명으로 불어난 인원이 7명의 공수부대원들을 향하여 돌을 던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근무지 이탈을 못하기에 피를 흘리며 부동자세로 서 있어야 했던 군인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는가?   당시 광주(전남일보)기자들은 그들이 돌을 피하지 않고 부동자세로 서있었다고 보도하였다 (무슨 사정이었는지 전남일보 편집자는 누락시켰음).

   7명이 수백 명을 상대로 과잉진압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거니와 기자의 증언대로 군인들은 부동 자세로 서있었다.  그리고, 과잉진압에 과잉시위한다는 주장의 허구는 그런 사실이 일제 강점기나 북한군 강점기에 입증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만약 참으로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이 있었으면, 파출서들을 파괴하며 순경들을 때리며 세무소 등 공공건물에 방화하였겠는가?  그런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5월 18일 폭동은 윤상원이 경찰이 전남대 학생회장 박관현을 죽였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일으킨 것이었는데, 그 거짓말이 나중에는 통할 수 없었으므로 1988년 광주청문회 때는 과잉진압론을 들고 나왔던 것이었다.

    도저히 사실이 성립될 수 없는 과잉진압론이 안보 논리에 적용되면 오늘의 안보 위기가 온다.  노무현의 논리는 한미동맹이 해체되고 한국이 고아처럼 되면 북한이 남침하지 않는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북한군인들은 미군만 없으면 남한은 한방에 때려잡을 수 있다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 전쟁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다.  분명히 과잉진압은 일본경찰이나 북한군이 하였을 것이다.  그때 감히 대항하지 못했던 것은 힘의 차이가 분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위 목적에 문제가 있었다.  당시 광주시민 중 다수가 윤상원이 뿌린 투사회보라는 삐라에 현혹되었다.  그들은 광주를 해방구로 불렀으며, 조금만 기다리면 광주의 독립을 지원하기 위해 미군이 시민군과 합세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당시 미 항공모함들은 북한의 남침 저지를 막기 위해 입항해 있었는데, 윤상원은 광주 독립을 지지하기 위한 입항이라고 발표하였으며, 많은 이들이 그런 선동에 현혹되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할 때 광주 독립안이 과연 민주화 운동 사상이었는가?

   이렇듯 윤상원은 광주 시민군에 미군 등의 동맹군이 있다는 착각을 사람들이 일으키게 하였다.  5월 18일 단 몇시간만에 광주 경찰이 괴멸되었다.  그래서 힘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5월 21일에는 이십 만명이 동원되었으므로 힘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고, 숫적으로 열세인 공수부대는 도청 사수 명령을 지키느냐 병사들의 생명을 보호하느냐의 기로에서 전원 퇴각을 선택하여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광주사태는 시민군 편에서 힘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발발하였으며 장기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자, 노무현은 한미연합사를 해체시키고 한국이 국제적으로 고아가 되면 북한이 남침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에서 안보 전략을 말하지만, 여기에 그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수백 조의 예산을 투자하여 주한미군 장비 흉내를 좀 내는 것이 가능하더라도 핵무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며, 무엇보다도 미군만 없으면 남한은 한방감이라는 북한군의 심리가 무서운 것이다.  한국전쟁도, 제2의 월남전쟁도 미군이 철수하였을 때 일어났다.  

   광주사태 때 광주군인들이 외곽으로 철수하자 광주 경찰서장과 전남치안본부장이 시민군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는데, 대한민국 공권력이 무장봉기군 앞에서 무릎을 끓어야 했던 것도 무장봉기군이 힘에 자신감을 가졌을 때 상대적으로 경찰서장과 치안본부장은 무력한 입장이 되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이 고아가 되어 북한군 기세가 동등해지면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전쟁 억제에 실패하는 것이요, 전쟁 억제에 실패하는 것은 민족의 멸망과 패망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이르게 할 것이다.
 

>> Not directly responsible for the genocide in Bosnian War. This was the first time a state was charged with genocide and could have further implications for future genocide suits.

>> Survivors of the genocide at Srebrenica were more than disappointed with the historic decision. In its application to the courts in 1993 about combos nah said it must not turn it's eyes away from Srebrenica. They ruled Belgrade was not responsible for the state policy of genocide during the Bosnia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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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e that the respondant exercised control.

>> Belgrade argued it had nothing to do with Bosnia's internal conflict. But the judge has established that genocide took place at Srebrenica needs r and blamed Servia for failing to stop it. The ruling said Serbia had violated its international obligations and refused to turn over ratko mladic and Slobodan Milosevic. They are both believed to be hiding in Serbia. In a reaction from the country that brought the claim, a Bosnian Muslim member of Bosnian's presidency said he was happy that Serbia was found guilty of violating the genocide convention.

>> We are still digging the graves and finding a lot of dead people there.  That is true. I think we all know who is the guilty party. That is Serbia. Unfortunately this is what happens. Serbia was found guilty on three counts of failure to prevent genocide from being the most important one of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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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 Belgrade's legal team, court decision was a victory. This is the first time a state has been judged over genocide. That Serbia has been cleared of a state policy of genocide has big implications of other cases on whether states or individuals can be held responsibility for the most serious war crimes. But breaching the genocide convention and not handing over the top fugitives is something Serbia will have to defend in its push to join the European U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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