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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옥같은 글

제목: 프란체스카 여사의 일기중에서

  내가 아내로서 가장 행복했을 때는 남편이 대통령이 된 후 첫월급을 받았을 때였다. 그 때 남편은 붓글씨로 [안빈낙업(安貧樂業)]이라는 글씨도 함께 써주었다. 

[어려운 나라실정과 자기분수에 맞는 검소한 생활을 즐기고 일하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뜻이 담긴 이 붓글씨를 나는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남편의 대통령 재임시 경무대에서 식사는 주로 내가 마련했고 우리의 내의와 양말도 꼭 내손으로 빨았다. 남편의 뜻에 따라 비싼 고기류는 명절과 축일 또는 손님접대할 때만 사왔다. 대통령은 보통가정의 평범한 음식인 물김치.콩나물.두부.김.된장찌개.생선구이 같은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우리집의 단골반찬은 이런 정도였다.
 
지금도 우리집에서는 콩나물을 길러먹고 두부도 만들어 먹고있다. 아침은 쥬스나 차와 함께 빵과 삶은 달걀을 들었다. 점심은 감자가 주식이었고 저녁에는 국수를 들거나 현미.보리.콩들을 섞은 잡곡밥을 지었다.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대통령을 위해 나는 달걀프라이 보다는 새우젓국물로 간을 맞추어 달걀찌개를 만들었다. 옛날, 대통령의 어머니는 달걀찌개와 두부찌개를 새우젓을 넣고 만드셨다고 친척아주머니가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두부찌개에 고추장을 넣어서 끓이기도 했지만 새우젓 국물에 끓이는 때가 더 많았다.
 
두부찌개는 풋고추와 파를 듬뿍넣고 함께 끓였을때 남편의 칭찬을 받았다. 워낙 식성이 좋았던 남편은 가리는 음식이 없었고 콩종류와 나물종류는 무엇이나 좋아했다. 특히 산채와 죽순은 신선들의 불로 장수식이라고 귀히 여겼고 이른 봄에 산과 들에서 캐온 향긋한 봄나물과 냉이국은 남편을 즐겁게 해준 경무대 식탁의 별미였다. 한식은 다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약과와 튀각과 약식을 좋아했다.
 
어려서부터 어란을 좋아했고 해산물과 생선찌개를 좋아했기 때문에 친척들은 가끔 이런 음식들을 대통령에게 보내왔다. 대통령은 팔오토박이 음식을 선물해주는 분들을 제일 고맙게 생각했다.
 
특히 생신날 약과와 함께 빈대떡과 전과 약식을 함께 한채반에 만들어서 가져오는 종가댁 아주머니들을 대통령은 무척 반가와했다. 항상 모든 면에서 검약하는 대통령이지만 잔치에는 음식이 넉넉해야 한다고 하면서 [내 생일 차려주시느라고 애쓰신다]고 치하하며 고마와했다.
 
나 역시 남편의 생신날 음식을 차려오는 분들이 제일 반갑고 고마왔다. 이토록 정성들여 맛있는 음식을 차려오는 친척들이었지만 대통령은 가까운 친척들을 정부요직에 기용하거나 특별배려를 해준 적이 없다.
 
후진국 족벌체제를 가장 싫어한 대통령의 이런 냉정함 때문에 은근히 불만이 있던 친척들은 서양아주머니인 나를 오해하기도 했다. 남편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초대내각을 구성하기 위해 여러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정부요직에 기용할 인물들을 물색할 때였다. 
 

정인보선생과 함께 감찰위원장 물망에 가장 많이 올랐던 분중에 이승국씨가 있었다. 이분은 집안의 동생벌되는 분으로 대통령과 어렸을 때부터 무척 다정한 사이였다. 학식도 있고 사회적인 덕망이 높았으며 독립운동을 한 경력이 있었다.
 
대통령은 젊은 시절 이승국씨와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기도 했다는데 다만 술이 좀 과한 것이 흠이라고 했다. 이승국씨가 특별히 과음을 하거나 주벽이 없다면 정부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유능한 분이라고 대통령을 생각했다. 대통령은 맛좋은 술을 준비해서 이승국씨를 이화장으로 초대했다.
 
남편은 이승국씨를 현관에서 맞으며 [아우님을 보니 옛낳 생각이 나는 구먼]하고 반기면서 특별히 안방으로 안내하여 미리 마련한 주안상을 내오도록 하였다. 남편은 이승국씨에게 술을 먼저 권하며 [나는 중요한 손님을 만나야하니 먼저 드시게]하며 자꾸 권했다.
 
[허물없는 처지인데 사양할 것 뭐있나. 천천히 마음놓고 들게. 내 금방 돌아올테니 염려말고 마시고 있게]하고 이범석씨가 기다리고 있던 응접실로 들어갔다. 기분이 무척 좋아진 이승국씨는 안타깝게도 형님의 마음을 전혀 모른채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범석씨가 돌아가고 남편이 안방으로 들어갔을 때 술병은 한방울도 남김없이 비어있었다. 겨우 몸을 가누며 일어난 이승국씨는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비틀거리며 돌아가는 이승국씨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대통령은 한참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정부요직에 기용은 안했지만 친동생처럼 아꼈던 이승국씨는 [국추회]라는 애국단체를 이끌다가 6.25동란때 납북되었는데 남편은 늘 가슴 아파했다.
 
대통령은 젊어서 한때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시도 짓고 즐겼는데 구국운동하면서 [나라위해 중요한 일 할때 술 마시다 실수하면 안된다]고 술을 끊었다고 한다. 경무대에서 손님을 초대할 때도 술을 대접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술없는 경무대 파티에 익숙한 외국분들은 초대받으면 미리 한잔씩하고 오는 분도 있었다고 한다. 경비절약을 위해 술을 뺀 경무대 초대연은 나름대로 외국 귀빈들에게 독특한 인상을 준 모양이었다. 각기 보는 인상을 다르지만 지금도 워싱턴의 친한파 명사들이 모이면 [구두쇠대통령]을 위해 자기들끼리 모여 건배를 했던 옛추억과 그시절 얘기를 나눈다고 다울링대사부인이 나에게 말해 주었다.
 
경우에 따라 외국손님에게 술을 대접할때는 우리나라 고유의 과일주나 <불로장수주>라는 막걸리를 내놓았다. 시인이나 화가에겐 특별대우를 했다. 예술가와 문인들을 위해서는 특별히 술대접을 할때가 있었다. 특히 남편이 좋아했던 오원 장승업의 그림은 고종황제께서도 술을 선사해야만 그림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호탕한 기질의 장승업은 술을 마셔야만 멋진 그림을 그렸다고 하면서 대통령은 나를 애먹이는 [술고래]였던 경무대의 요리사 양학준노인을 늘 두둔해 주었다. 대통령이 요리사 양노인을 감싸주는데는 사연이 있었다.
 
나이는 대통령보다 몇살 아래였다. 일찌기 자식하나를 두고 상처한 뒤 자식마저 살림을 차려나가자 외로운 처지가 되었다. 대통령은 늘 쓸쓸해 보이는 양노인을 감싸고 돌았고 6.25동란 중 피난갈때도 가정부 대신 양노인을 데리고 갔었다. 그는 얼굴생김이나 풍채, 희끗희끗한 머리가 대통령과 비슷한데가 있었다.
 
임시 관저에서 피난살이 할 때 미8군에서 고기류와 빵을 보내오고 시민들이 대통령을 위해 지게에다 감자.옥수수.달걀.닭 등을 지고 와서 두고 간 적이 있었다. 대통령은 이런 음식이 생기면 전방의 병사들과 신병훈련소의 배고픈 아들들을 생각했다. 대통령은 양노인을 불렀다.
 
[자네 나하고 같이 수고좀 해주어야겠어. 저 음식을 가지고 가서 자네의 훌륭한 요리솜씨로 우리 애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겠네] 신병훈련소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와서 특식을 제공한다는 연락을 받도 군악대까지 대기시켰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양노인이 음식을 먼저 챙기기 위해 발판을 내려섰다.
 
군악대는 환영연주를 시작했다. 양노인을 대통령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양노인은 당황해서 [나는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두 손을 내저었다. 군악대는 대통령이 환영연주에 답하는 줄 알고 더 신이나서 나팔을 불어댔다. 이 헤프닝이 있고 난뒤 [자네는 음식대통령이야, 내 시찰때 함께가서 애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면 군악대가 먼저 환영할 사람은 자네일쎄]하고 말하면서 대통령은 양노인을 수시로 데리고 다녔다.
 
대통령과 달리 나는 양노인이 별로 탐탁치 않았다. 그는 나를  [깍쟁이 사모님]이라고 했고 모든 면에서 절제하고 아끼는 경무대에서 술을 자주 마셨다. 평소엔 조용했지만 술만 마시면 주벽이 있어서 밤늦게 주방으로 직원들을 모아들여 냉장고의 식료품을 꺼내어 자기 마음대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나는 무척 신경이 쓰였다.
 
어느집 주부든지 이런 기분은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날 밤 11시가 다 되어 주방에서 떠드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양씨가 술에 취해 [자선파티]를 열고 있었다. [소금 조금] [간장 조금] 하고 내 흉내를 내면서 웃는 소리가 났다. 가정부가 걱정이 되는지 [대통령사모님에게 들키면 어떡하려고 이러세요]하자 [내 빽이 대통령인데 <깍쟁이 사모닌이 어쩌겠어>]하며 큰 소리를 쳤다.
 
나는 깍쟁이란 말을 듣기는 했지만 무슨 뜻인지 그때까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나는 대통령에게 양씨가 나더러 깍쟁이라는데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살림 잘하는 알뜰한 부인네를 칭찬하는 말]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나는 그말이 좋은 뜻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우리는 식사전엔 꼭 기도를 올렸고 성경책은 식탁옆 찬장서랍에 넣어 두었다. 한번은 술에 취한 양씨가 그 성경책을 베고 코를 골다 나에게 들켰다. 나는 대통령을 모시고 와서 보여주었다. 남편은 상보를 접어 베개를 만들어 양씨에게 받쳐주고 성경을 빼내며 [참좋은 사람이야. 술을 마시고도 성경을 보더라니]하며 빙긋이 웃었다. 대통령과 요리사가 아닌 노인네끼리의 따듯한 우정을 그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우남 이승만과 건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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