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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군과 제주 특별자치도

 


제주도를 특별자치도로 바꾼다는 내용의 3월 24일자 KBS 뉴스 동영상.

 
한국인들이, 특히 무식한 운동권이 자주하는 거짓말 중에 1980년 5월 17일 신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하였으니 쿠데타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없다. 계엄은 10.26 사태 때 이미 선포되었던 것이요, 국방부는 단지 5.17국무회의 때 신현확 국무총리께 북한군이 제주도를 먼저 점령할 것이라는 군사정보를 보고하였을 뿐이었다. 북한군 남침 위협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었던 제주도가 실은 안보 취약지구였다는 정보였다. 그래서 정부가 계엄을 제주도로 확대하였을 뿐이었다.

본래 5.17비상국무회의는 5월 22일 김대중이 전국적 민중봉기를 일으켜 국가를 전복하려 한다는 제보를 운동권이 제보한 것과 때를 같이하여 중국과 일본과 미국 3국이 5월 22일 북한군이 남침하려 한다는 정보를 우리나라 정보에 통보하였기 때문에 열린 것이었다. 그리고, 북한군 십만 명이 휴전선에 총집결하여 남침 명령을 기다리고 있지만 미군의 인계 철선 때문에 휴전선 관통 대신 제주도를 먼저 점령하고 부산에서부터 올라오려 한다는 정보에 따라 미국이 항공모함 두 대를 5월 22일까지 각각 제주도와 부산항에 입항할 수 있도록 급파하였던 것이다.

1948년 4.3 사건이 있었던 제주도가 미국의 관심을 끈 때는 1950년 8월이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반대하던 미국 정부는 대한민국의 명맥을 유지하는 대안으로 대만의 경우처럼 인구 십 만 명을 제주도로 이주시켜 대한민국의 명맥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북한과 휴전 협상을 맺으려 하였다. 낙동강 전투에서 이미 십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본국의 반전 여론에 밀렸던 미국 정부의 고육지책은 그것밖에 없었으나 맥아더 장군이 결사 반대하고 9.15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였기에 국토회복이 가능하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1980년 제주도를 먼저 점령하려 하였던 북한의 전술은 최근 김정일의 행보에서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최근 김정일이 현대 현정은 회장에게 자신이 제주도 한라산에 가볼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라고 지시하다시피한 적도 있거니와 김정일은 북한 고위층이 제주도 지형을 살필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 놓았고, 한국 해군의 대응 능력을 테스트하는 장난도 여러번 쳤다. 그리고 그때마다 노무현 정권은 김정일에게 고분고분하였다.

사실, 독도의 문제는 영토의 개념의 모호함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런데, 제주도 특별자치도의 문제가 바로 그 문제이다. 국제 도시로 성장시키기 위해 자치제를 실시한다는 것은 제주도민에게는 제주도가 어느 나라 땅이냐 하는 문제이다. 만약, 바로 코 앞에 있는 일본인이 가장 많이 투자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북한의 접근도 자유롭다는 것이 노무현 정부의 논리인가?

사실, 자유항의 모형은 관동주였다. 많은 이들이, 특히 좌익이 만주는 일본 영토이므로 박정희는 일본군이었다는 거짓말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 관동주는 거제도만한 크기의 자유항이었다. 그런데, 좌익이 관동주에 일본인들이 거주하였으니, 만주 전체가 일본 영토였다는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장차 제주 국제도시에서 일본인들이 거주할 때 제주 자유항에 일본인이 거주하니 한반도 전체가 일본 영토라고 우길 것인가?

사실, 여기에 자유항 주민의 정체성 문제가 있다. 영국이 홍콩을 백년간 조차하였듯이, 일본도 노일 전쟁 후 러시아로부터 99년 조차권을 승계하였는데, 관동주라는 자유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일본 국적을 유지하는 것이 편법으로 가능하였지만 일본 국민은 이들을 사실상 외국인으로 간주하였다. 관동주 이민은 일본 정부가 장려하였다. 그러나, 1945년 8월 시베리아로 끌려간 70만명의 일본인들에 대하여 관동주는 일본 행정구가 아니라는 이유로 일본은 여태껏 방치하여 온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특히 좌익이 만주는 일본 영토였으므로 중국이 가져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고수하고 있다. 그들은 관동주라는 자유항에 일본인들이 거주하였었으니 만주국 전체가 일본 영토였다고 우기는 것이 항일이라고 우기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만주가 일본 영토였다고 우기는 것은 한국인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는 짓이요, 일본인들 앞에서 무식의 약점을 잡히는 일이다. 그리고 한국인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면서 어떻게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항의하겠다는 것인가?

사실, 중국 역사에서 중국은 만주를 우리나라 역사의 일부로 보아왔었다. 1912년 신해혁명은 한족의 만주족에 대한 쿠데타였으며, 이후 한족 군벌이 만주에서 만주족을 지배하였지만 중화민국 영토였다고 그들 스스로 실감하지 못하였다. 국제사회에서 중국 국민당은 만주가 중국 영토라고 사기쳤지만 1946년 국민당 군대가 들어갔을 때 만주족이 독립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는 사실도 만주국은 결코 중국 영토가 아니었음을 입증한다.

동북공정이 무엇인가? 그것은 1953년에 강제로 중국 영토에 편입시킨 만주국 영토를 역사학적으로 편입시키려는 음모이다. 그런데, 이 음모가 완성되려면 한반도의 역사도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우겨야 한다. 왜냐하면 고전적 중국 역사에서 만주족과 한민족은 한묶음이기 때문이다. 언어도 풍습도 비슷한 만주족과 우리 민족을 통틀어 중국인들은 동이(동쪽 오랑캐)라 불렀으며, 동이는 중국 역사의 일부가 아니라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동이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면 만주족의 역사와 우리민족의 역사를 한다발로 묶어야 하는 것이다.

1932년 만주국 건국 당시 관동주라는 자유항도 어느 나라 땅이냐 하는 애매모호함이 있었지만 만주 자체가 그런 애매모호함이 있었다. 좌익은 만주가 일본 영토였다고 우기지만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독립군들이 독립군 사관학교까지 만주에 세울 수가 있었겠는가? 그리고 만주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국적 또한 애매모호함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애매모호함에 잘 적용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주에, 특히 간도에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간도는 재산권이 우리 민족에 있다. 그럼에도, 운동권이 만주는 일본 영토요 중국 영토라고 우길 때 이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역사 왜곡이다.

만주국의 한 자유항이었던 관동주에 거주하던 일본인 재산을 보호하던 군대를 관동군이라 부른다. 그런데, 그 일만 명이 만주 전체를 점령하고 삼천만 만주국 국민을 통치하였다고 우기는 것은 역사 사기이다. 1931년 만주 사변은 정확히 말하면 북만주사변이었다. 그러나, 만주인 중에 손가락 한 명 다친 이가 없었다. 한족 군벌의 지배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하던 만주족은 관동군과 한족 군벌이 북만주에서 충돌한 것을 환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주를 만주와 북만주와 동만주로 분할한 것도 한족 군벌의 소행이었기에 만주족 편에서 한족 군벌을 축출하고 독립을 쟁취하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기술 없고 시장 경험 없는 중국이 불과 이십 년 만에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데는 자유항의 기여가 컸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는 관동주에서 온 것이었다. 관동주는 만주국 편에서는 있으나마나 한 작은 땅이었지만 관동주라는 자유항이 있으니 만주국은 가만히 앉아서 최첨단 산업기술과 자본을 끌어들일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후진국이 어떻게 선진국 산업기술을 끌어들이는가? 만주국 편에서 관동주는 이상적인 모델이었으며, 등소평도 자유항으로 선진국의 산업 투자를 유도하고, 해외 기술이 중국에 스며들게 하였다.

오늘날, 제주도 국제도시 아이디어도 바로 여기서 왔으리라. 그러나 이상한 점이 있다. 독도 영유권 문제 가지고는 일본과 그렇게 싸우면서 왜 하필 일본 코 앞에 있는 제주도를 자유항으로 삼는다는 말인가? 자치제 실시는 국적 개념의 모호함과 동의어이다. 여기에 해양 어디까지가 대한민국 영토이냐는 문제가 따르게 된다. 그리고 자치 국제도시의 국방은 어느 나라에서 책임질 것인가 하는 문제도 따르게 된다. 역시, 가장 이상적인 자유항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에서 구상하셨다던 "가로림 FTS(자유경제특구)' 구상이다.

역사학도의 BBC 동영상 뉴스 카페 cafe.daum.net/bbcnews

www.study21.org


참고하세요



사진설명: 1932년 3월 1일 건국을 선언한 만주국건국선언문.

훗날 1932년에 만주국을 건국하고 1942년에 박정희를 만주국 군관요원으로 일본육사에 장학 유학보냈던 만주국 황제 부의가 우리나라 한일합방 당시 4살의 나이에 청나라 마지막 황제로 취임하던 장면을 지금 여기로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를 클릭하시면 박정희 대통령의 자유항 구상인 <朴正熙의 대야망-이슬숲 프로젝트>를 시리즈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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