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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 파시즘이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노무현의 무식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미국 경제 대공황 장면들을 보여주는 위의 다큐멘터리 동영상. 파시즘의 의미와 등장 배경에 대한 설명이 나옴.

 
  1950년대 미국 유학 시절 경제학 정론을 배우며 연구하셨던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양김씨는 전혀 경제학 이론을 배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경제를 양김씨에게 맡기자는 어리석음이 부마사태와 광주사태를 일으켰다. 무엇이 부마시태의 원인이던가? 1979년 가을 김영삼이 미국 대통령과 면담하여 한국 경제가 발전하면 민주주의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미국 대통령을 교육시키는 장면이 세계 유수 언론들에 대서 특필되자 국회가 김영삼의 총재직을 박탈하였다. 그러자, 경제 발전을 민주주의 발전에 걸림돌이라는 김영삼의 지론을 지지하는 이들이 부마사태를 선동하였다.

우리나라 대학가 대자보의 효시는 1980년 5월 김대중이 광주사태 일으키기 위해 각 대학교 게시판에 붙인 선동 대자보였다. 김대중은 이해찬에게 그 일을 시켰고, 이해찬은 오늘날 386운동권이라 불리는 후배들에게 그 일을 분담시켰다. 그런데, 그 대자보가 부마사태 때 이미 등장하였으며, 그 키워드는 농민수탈금지였다. 부마사태를 선동하기 위해 1979년 10월 15일 부산대학교에 붙은 대자보는 이런 문구로 시작된다: <<식민지적 경제구조를 온존시키고 그 위에 원조와 차관경제로써 허세를 부리면서 GNP와 수출만능으로 대외의존을 심화시켜온 매판기업가와 관료지배세력은 농촌경제의 파탄과....>>

그런데, 광주사태 선동의 키워드 역시 "농민수탈금지"였다. 당시 전남대학교에 처음 진주하였던 공수부대원들은 대학 교정 곳곳에 쓰여져 있는 대부분의 구호는 붉은 글씨였으며, 그 구호는 "농민수탈금지"였다고 증언한다 (
http://blog.naver.com/bookclub/40014565904


그러면, 부산대학교와 전남대학교의 시위 선동 키워드가 일치하였던 사실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아마 그것은 양대 시위의 배후에 있었던 윤상원이란 인물이 그 연결 고리일 것이다. 윤상원의 동지였던 박노해 노동시인은 광주사태를 준비하던 5월 9일의 모임에서 윤상원이 경찰서 무기 탈취를 이런 말로 선동하였다고 증언한다: <<노동자 대중이 부산 연합 철강을 불지르는 등 민중들의 정치적 진출이 확대되고 있고, 파쇼 무리의 내부분열로 통일적인 권력 통제가 잘 되지 않고 있는데, 민중운동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이야말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니냐고 다그쳤다.
http://leejeonghwan.com/cgi-bin/read.cgi?board=reading&nnew=2&y_number=246
>>

그러니깐, 윤상원의 논리는 파쇼 무리가 분열되어 있으니깐 이 기회를 틈타 무기 탈취하여 광주사태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러면 도대체 윤상원은 파쇼를 무슨 뜻으로 사용한 것일까? 광주사태 직전에 서울과 광주 대학가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으며, 그 시위 구호는 "최규하 대통령 하야" "직선제 개헌 반대" "신현확 총리 퇴진"이었다. 대통령과 총리 내각이 동시에 퇴진하면 정부가 붕괴된다. 그리고, 직선제 선거마저 못하게 하면 차기 정권의 선정과 정권 승계가 불가능하므로 민주주의 국가가 전복된다.

그럴진대, 우리는 어째서 386운동권 미개인들은 민주주의 국가를 전복시키는 것이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인지 그들의 이상한 논리를 따져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386 미개인들은 파시즘의 뜻이나 알고 그 말을 자주 사용한 것인지 물어야 한다. 최규하 대통령 정권이 파쇼 정권이었는가? 아니다. 취임 때부터 최규하 대통령은 4공화국은 5공화국을 탄생시키기 위한 과도기 정권이라고 말하였다. 따라서, 그의 과제는 경제 정책이 아니라, 직선제 선거 싫시였다.

파시즘이란 노무현 독재정권의 경제정책에 해당되는 말이다. 파시즘은 사회 양극화를 지적하며 국가절대우위로 양극화를 해결하겠다고 나선다. 본래, 자본주의 등장 이전의 인류 사회는 양극화 사회였다. 고대인들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일을 안하면 상전이 때리기 때문이었다. 서양 중세 시대에는 양극화 문제를 부자는 죄인이라고 단정함으로써 해결하였다. 청빈한 수도승은 성자로 존경받으며, 부자는 죄인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종교 개혁은 그 패러다임을 바꾸어 근면하여 잘 사는 것을 정당화하였다.

종교 개혁이 그 물꼬를 튼 자본주의는 부자를 근면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하였으며, 누구든 근면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일의 동기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서구 경제는 이때부터 발전하였다. 20세기 중반에 파시즘의 실험이 있었는데, 양극화의 문제는 개인주의요, 따라서 국가권력으로 개인주의를 통제하자는 발상이 파시즘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노무현이 국가 권력을 이용하여 양극화 문제 해결사가 되겠다고 자처할 때에 바로 이것이 파시즘인 것이다.

인류는 파시즘의 문제는 인권 탄압인 것을 경험하였다. 북한 역시 근면한 자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파쇼 정권이다. 박정희 대통령 정권이나 전두환 대통령 정권처럼 시장경제을 존중하는 정권은 파쇼 정권일 수 없다. 실제로, 경제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길 때 발전하였으며, 경제를 국가가 철저하게 통제하는 북한식 사회주의 파시즘은 철저하게 실패하였다. 그럼에도 노무현이 지금 그 전철을 밟으려 하고 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한 국가는 빈부의 격차를 인정할 때에 누구나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된다. 누군가 먼저 열심히 일하여 자본가가 되고, 자본가의 투자가 있을 때 나라 경제가 굴러가게 된다. 지금 한국 사회가 양극화가 된 것은 김대중의 사람들이 알짜 기업을 외국에 헐값에 팔아넘겨 자기네 호주머니에 집어넣기 때문이지, 근면한 사람들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근면한 사람들을 국가가 죄인 취급하는 것은 파시즘이요, 일의 동기를 도적질하는 것이다.

며칠전 노무현이 자기 정부를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말하였다. 만약 노무현이 좌파를 좌익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면, 스스로를 해방 정국의 좌익, 즉 남로당 계열이라고 밣힌 셈이다. 노무현이 무슨 뜻으로 좌파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든 그것은 신자유주의와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광주사태 시위구호가 "농민수탈금지"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광주사태의 후광으로 대통령이 된 노무현이 쌀시장 개방에 앞장선다. 말하자면, 선의의 경쟁을 하자는 신자유주의를 본받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것은 개인의 소유권을 국가가 전폭적으로 통제하겠다는 좌파의 사회주의적 파시즘과는 짝이 안맞는 용어인 것이다.

BBC 동영상 뉴스 카페 cafe.daum.net/bbcnews

cafe.daum.net/issue21


참고하세요

지금 여기를 클릭하시면 할리우드 영화에 나타난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미국 경제 대공황 다큐멘터리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 1980년 5월의 시위 구호는 "최규하 대통령 하야" "직선제 개헌 반대" "신현확 총리 퇴진"이었다. 당시 서울대 운동권 정윤광은 "80년 서울의 봄(3)"이라는 그의 기사에서 직선제 선거 반대 시위가 최규하 대통령의 직선제 개헌안을 좌절시키는 과정을 이렇게 증언한다: "5월 10일 정부주도 개헌공청회가 취소되었고" <<이 와중에도 최규하는 5월 10일 중동순방을 위해서 출발하였다. 10일에 정부내에서 신군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으로 알려진, 실권자 신현확은 13-14일경 저녁 TV기자회견을 통해서 특별담화를 발표할 계획을 밝혔는데, 최규하의 중동순방중에 계획되어 있어서 비상한 주목을 끌었다. 특별담화에는 <정부의 정치일정 단축문제> <정부개헌심의워 활동문제, 개헌의 절차 및 방법> <비상계엄해제시기> <당면 경제문제> 등을 담을 예정이었다. 5월 10일 정부주도 개헌공청회가 취소되었고, 5월 12일 개헌 2-3개월 단축키로 한다고 발표하였고, 신현확은 학원자율방침 불변이라고 말하였다. (출처:

http://www.pdss.net/sub/sect_report_content.asp?sect_num=18&r_num=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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