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칼럼
영화상영관
시사동영상
추천사이트
사이트맵
   토론 주제

한명숙은 용공서클에서 활동했었다

 

1970년대 후반의 위대한 국가 건설의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위의 동영상.

 
  요즘 한명숙 측이 <한명숙(韓明淑) 총리지명자가 2년여간 옥고를 치른 계기가 된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은 유신체제 말기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용공서클 사건이다.>라는 말을 흘리고 다니는 듯한데,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위의 말을 풀면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이던 시절의 중앙정보부가 조작하였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군 출신 김재규가 누구던가? 일본에서 간첩질하던 김대중이 자기 사람으로 언급하던 인물이 아니던가. 1972년 김대중이 중앙정보부의 자기 인맥 이종찬과 운동권의 김지하 시인과 군부 내의 좌익 장교들의 사조직인 오죽회와 손을 잡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려 하였을 때도 김재규가 같이 행동했었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논리는 김재규의 군사쿠데타가 완성되었어야 했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그러기에. 이런 논리에서는 김재규의 군사 쿠데타를 막아 한국 민주주의를 구한 전두환 장군은 죄인 취급을 받는다.

그러면, 한명숙은 김재규가 아니라 그 밑에 실무 총책임자가 조작하였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 역시 새빨간 거짓말이다. 당시 중앙정보부 총무국장은 바로 김대중의 심복이었던 이종찬씨가 아니던가? 만약, 이종찬씨가 용공 서클 조작을 하였다면 김대중이 대통령 취임하자마자 이종찬씨를 국정원 원장에 임명하며 김대중 정권 제2인자로 삼았을 리가 있었겠는가? 따라서, 이종찬 총무국장이 조작하였다는 주장도 새빨간 거짓말이다.

한명숙과 같은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들이 줄곧 추진해 온 것이 김재규를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포상해 온 것이었는데, 김재규가 용공 서클 조작했다는 주장에서 운동권 사기꾼들의 거짓말은 금방 탄로난다. 만약 정말로 김재규가 그들을 대상으로 용공 서클 조작한 적이 있으면 그들이 김재규를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포상해야 한다고 주장할 리가 있겠는가? 따라서, 김재규를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포상해야 한다고 그들이 우기면 우길 수록 김재규가 용공 서클 조작했다는 그들의 주장은 거짓말임이 금방 탄로난다.

그리고 한명숙이 용공 서클에서 활동하고서도 안했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운동권을 모독하는 것이다. 여기서 용공 서클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서클을 말한다. 그것이 바로 운동권의 이념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념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운동권은 사상이 결여된 놀부들이었다고 밝히는 꼴이 된다. 운동권이 무엇을 위해서 정치 활동하였는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었다. 그것이 바로 1970년대 김대중의 선거 공약이었다. 그런데, 그런 취지의 운동권 활동을 하고서도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 사상 없이 국가 건설을 방해했다는 것을 폭로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명숙이 크리스챤 아카데미 명칭을 팔 때 그녀의 사기꾼 근성을 드러낸다. 운동권 활동에 크리스챤 이름을 파는 것은 광주사태 때 폭도들이 군복 입고 군인인척 한 것과 별반 다름없는 사기 행각이다. 한명숙이 여성들에게 의식화 교육을 하였을 때 성경을 가르쳤는가, 복음을 전하였는가? 아니면 전도를 하였는가? 왜 좌익 운동권 활동에 크리스챤 이름을 붙이는가? 그것은 문익환이 기독교 목사 이름 팔아 용공 활동하던 것 못지 않는 명칭 사기이다. 한명숙은 그 당시 의식화 교육 내용이 기독교 복음이었는지 아니면 좌익 사상이었는지 공개하라!

강원용(姜元龍) 목사 이름을 팔 것도 없다. 김동길 교수 못지 않게 강원용 목사도 그 당시 운동권에게 속아 이용당한 것을 분해하고 있다. 1970년대에 용공 활동을 하던 목사들이 있다. 그 중에는 문익환 목사에게 잠시 속은 목사도 있었기에 아무개 목사는 좌익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몹시 신중한 문제이다. 김진홍 목사처럼 그때는 운동권에게 이용당하였으나 지금은 운동권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통렬하게 분해하는 분들이 계시지 아니하는가? 그럼에도 용공 활동을 하던 목사들이 있었다는 것은 기독교계에서 솔직히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다.

1970년대 용공 활동은 국가 건설 방해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그 정치 논리가 용공 사상에서 출발하는 김대중이 왜 고속도로 건설을 방해하였는가? 그것은 그의 목적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었기 때문이다. 5.16 혁명 당시 우리나라 산에는 나무가 없었다. 산에 나무가 없는 벌거숭이 붉은 민둥산 모습이 요즘 신세대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우리라.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 집권 15년만에 한국은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나라로 변하였다. 변한 것이 어디 그뿐이었는가? 집권 15년 만에 한국인 수명이 55세에 67세로 늘어났다. 1960년대 중반만 해도 한국인이 환갑을 맞이하는 것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에 나이 60은 한창 일할 장년이었다.

사실, 박정희 대통령의 공장 건설은 그 결과가 1980년대부터 나타나게 되어 있는 투자였다. 그런데 수확기가 아닌 씨뿌리는 시기에 벌써 국민 수명이 12년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이 잘사는 나라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왜 악질 운동권은 한국이 잘 사는 나라가 되는 것을 온갖 수단을 다해 방해하려고 하였는가? 그것은 그들의 목적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그들의 의식화 교육이었던가? 그것은 근로자에게서 근로 정신을 도둑질하는 것이었다. 왜 그들이 근로자에게서 근로 정신을 도둑질하려 하였는가? 그들의 목적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요, 그 배후에 용공주의가 있었다.

운동권이 용공 활동을 하고서 크리스챤 아카데미 간판을 갖다 붙이면 민주화운동이 되는가? 아니다. 기독교 복음 전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에 크리스챤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한명숙은 언제까지 국민을 기만하려 하는가? 만약 한명숙이 좌익 사상이 바로 기독교 복음이라고 우긴다면 그것은 한명숙은 무식하거나 사기꾼이라는 반증이다. 만약 무엇이 진실이었는지를 밝히고 싶다면 그 당시 여공 의식화 교육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지금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기독교계의 시각에서 본다면 1970년대에 참으로 용공 활동을 하던 목사들이 있었다. 그것은 그분들이 모두 좌익이었다기보다 무식해서 한때나마 좌익 사상에 속아넘어갔기 때문이었다. 목사들이 한국 경제를 바로 잡겠다면 공장 폐쇄와 산업 도산 운동을 하였을 때 그것은 그들의 경제학적 무식을 드러낸다. 그리고 경제학적으로 무식한 이들이 경제를 바로 잡겠다면 정치 황동을 한 것은 무식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인도에 목사탈을 쓴 공산주의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좌익 활동을 그대로 베껴온 목사들, 그리고 남미 해방신학을 그대로 베껴온 목사들이 있었는데, 남미 해방주의 신학자들이 공산주의 혁명가들에게 무기를 대주는 우를 범했다면 전혀 용공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1970년대 운동권 목사들은 경제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무식했다. 그들은 전태일을 한국 예수라고 불렀는데, 단지 존경의 뜻에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전태일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라는 의미로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그것이 신흥종교 사상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기독교 신학일 수는 없는 것이다. 당시 민중신학자들은 이 정도로 기독교 신학에 대하여 무지하였었다. 전태일의 행동은 섬유산업을 중국에 빼앗기에 하여 한국 미싱공들이 일자리가 없게 만들었다. 자연 임금 상승으로 얼마든지 유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 미싱공들에게서 영구히 일터를 빼앗아갔다. 그것이 구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학은커녕 좋은 경제 이론도 아니다.

당시 운동권의 여공 의식화 교육이 YH사건을 초래하였고, YH사건이 부마사태를 초래하였는데, 그 사건 이전의 한명숙 여성(여공) 의식화 교육 내용은 무엇인가? 아래 인용문은 YH사건과 부마사태를 선동하던 당시 운동권이 부산에 뿌렸던 대자보 인용문인데, 한명숙이 시킨 의식화 교육도 동일한 내용이었는가?

<<한민족 반만년 역사 위에 이토록 민중을 무자비하고 처절하게 탄압하고 수탈 한 반역사적 지배집단이 있었단 말인가? 식민지적 경제구조를 온존시키고 그 위에 원조와 차관경제로써 허세를 부리면서 GNP와 수출만능으로 대외의존을 심화시켜온 매판기업가와 관료지배세력은 농촌경제의 파탄과 이로부터 쫓겨나온 대다수의 도시근로자가 셋방살이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신음하며 병든 근대화의 표상이 되어 자신들의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생활과의 대립이 첨예화함을 두려워하여 모든 경제적 모순과 실정을 근로자의 불순으로 뒤집어씌우고 협박, 공포, 폭력으로 짓눌러왔음을 YH사건에서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저들의 입으로나마 나불대던 민주공화국의 형식논리마저도 이제는 부정함을 야당의 파괴 음모에서 깨닫게 하여 주었다. >>

만약 바로 이 대자보 내용과 한명숙의 의식화 교육 내용이 유사하였다면 분명 그것은 기독교 복음이 아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크리스챤 아카데미라는 간판을 갖다 붙이는가? 그리고, 한명숙의 의식화 내용이 국민에게 지금 공개되어야 하는 이유는 본래 부마사태와 광주사태 배후 세력은 동일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YH사건은 부산 사람이 아니라, 광주사람 윤상원이 선동하였다. 그리고, 윤상원의 동지 박노해 시인은 김일성이 남한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킬 프롤레타리아트 전위를 필요로 하고 있었을 때 윤상원이 바로 그 프롤레타리아트 전위가 되는 과정을 그의 저서 "윤상원 평전"에서 이렇게 증언한다:

<<4월 초순 충장로의 다방에서 상원을 만난 이태복은 상원에게 전민노련의 중앙위원 겸 광주 지역 노동운동을 총괄 지도하는 임무를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상원은 엄숙하고 기쁜 마음으로 승낙했다.

평소에 상원은 협소한 써클 적 관계와 지역적인 활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전국적 전망을 가진 혁명 조직 건설은 한시도 방기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당시에 전위 조직이라기에는 아직 초보적이고 원칙적 지향성을 내포한 정도였지만, 이태복이 추진한 전민 노련 추진은 상원에게는 질적 비약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이었다.

당시 전민 노련 추진 주체들은 노동 운동 내에 만연한 조합주의적 경향성과 써클 적인 고립 분산 성을 극복하는 것이 긴급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를 위하여 진보적인 지식인과 선진적 노동자가 직접적으로 결합하여, 기존의 어용 노총을 대신할 새로운 노동 조합 운동 조직을 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합의하였다. 이를 통하여 노동 운동 내에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적 부르주아지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혁명적인 노동 계급 당파성을 세워 내고자 하였다.

당시 전민 노련 성원들 모두가 혁명적 전위 정당 결성의 전망과 계획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였지만, 그 기초적인 지향성은 강력히 내포하고 있었다.
상원은 자신이 지금까지의 운동 과정 속에서 품고 있던 문제의식과 아직 선명히 정식화되지 못하고 단상과 직관으로 머물러 있던 사상들을 이태복과의 토론 속에서 하나하나 점검해 나갔다. 석 달 동안 밤을 지새는 격렬한 토론과 치열한 확인 과정을 통하여 서로의 정치사상을 일치시켜 나가는 힘겨운 작업 끝에, 마침내 상원은 전민노련에 가입할 것을 결단한 것이다.

상원은 이와 같이 이태복과의 만남과 전민 노련 중앙위원으로 선임되는 과정을 통하여 프롤레타리아트 전위로서 자신을 새롭게 단련할 계기를 맞게 된다. >> (출처: http://leejeonghwan.com/cgi-bin/read.cgi?board=reading&nnew=2&amp;y_number=246)

프롤레타리아트 전위란 사회주의 국가건설 전위가 되겠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런 사상을 가진 자들이 김대중 정권 하에서 벼락 출세하였다. 만약 한명숙이 프롤레타리아트 전위를 두둔한다면 그것은 중앙정보부 조작이 아니라, 참으로 프롤레타리아트 전위가 그 당시 대한민국 내에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요, 따라서 국가보안법이 필요하였음을 의미한다. 이 사실에 대하여 한명숙은 무어라고 말하는가?


광주사태 토론장 (http://cafe.daum.net/issue21 )

http://blog.paran.com/essaytown

영어 뉴스



사진설명: 1970년대말 운동권이 여성들에게 의식화 교육을 하는 장면. 그 결과로 근면성과 일터를 아울러 운동권에 도적질당한 여성 근로자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사진설명: 광주시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폭도들은 군복을 입고 군인 모습으로 위장하여 못된 짓을 한 다음 군인이 그랬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한다. 그리고 해마다 북한에서는 광주사태 기념식을 성대하게 하는데, 군복차림으로 위장하고 국군에게 총구를 겨누던 시민군을 북한 공산정권이 영웅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럼에도 한명숙은 무엇이 용공성이 있는 행동이었는지를 가름하지 못하는가?

 


[설교 방송][기독교 영화][음악 동영상][영화감상실][동영상][추천 사이트][사이트맵][영어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