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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5.16 혁명은 민주화 운동이었다



한국의 숨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보여주는 위 동영상 잘 보여요? 유관순 누나 외에도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있죠?



오늘(2006년 3월 7일자) KBS 뉴스 방송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 뉴스가 보여주는 건국공로훈장 사진이 박정희의 5.16 혁명에 대하여 우리에게 놀라운 단서를 보여준다. 그간 노무현 독재 정권은 박정희 대통령을 군사 독재자로, 친일파로 매도하려고 무던히도 애써 왔다. 그들은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했다고 사기쳐 왔다.

그러나, 만약 1961년의 5.16이 쿠데타였다면 어떻게 1962년 대통령이 윤보선씨였다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가? 쿠데타란 누군가가 강압적으로 국가 원수의 자리를 빼앗는 것을 일컫는다. 그리고 김대중은 군부 좌익과 짜고 그런 시도를 여러번 했었다 (예를 들어, 월간중앙 기사 "이종찬­ - 김지하 ‘維新 저지’쿠데타 모의 했다!!"를 보라. )

사실 4.19 의 또 다른 면은 피를 많이 흘렸다는 것이다. 1961년 3월 어떤이들이 무리를 지어 몽둥이를 들고 공무원 집들에 몰려가 그 가족들을 구타하였다.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몽등이에 피흘려 쓰러지는 민간인들이 많으니 경찰이 출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4.19 후에 많은 경찰 간부들이 사형을 당한 듯하다. 그러나 5.16 혁명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사실을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 쿠데타는 박정희 소장이 아니라, 장면 총리가 일으켰다. 한국 민주주의는 이승만 대통령과 더불어 시작되었는데 4.19 주역들이 민주주의에 대하여 무지한 이들이었기에 장면 총리의 쿠데타는 어쩌면 필연이었다. 무엇이 4.19 주역들의 논리였는가? 그들은 제일 먼저 직선제를 없애고 그들 스스로 간선제로 대통령과 총리를 선출하였는데 그들의 내각제 논리는 이러하였다.

가령 세 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백 표 중 97포를 윤보선 후보가 얻고, 2표를 장면 후보가 얻고, 나머지 한 표를 제3의 후보가 얻었다 하자. 그런데, 2공화국 주역들의 내각제 논리에서는 최고 득표자 대통령은 허수아비가 되고, 청와대는 허수아비를 위한 양로원이요, 실권이 총리에게 있다. 즉, 선거에 이긴 자기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요, 차점자에게 실권이 있다. 이런 논리에서 국가 원수가 누구인가 하는 물음이 나오며, 이것이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가 서로 자기가 국가 원수라고 주장하는 싸음을 낳게 되었다.

이러한 장면 총리의 정치적 쿠데타에 대하여 윤보선 대통령이 역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지지 기반이 약하여 올데 갈데 없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였다. 그리고, 대통령의 재가 하에 혁명 공약이 선포되었다. 만약 윤보선 대통령 정권이 바꾸었으면 쿠데타라는 주장에 근거가 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없다. 단지, 4..19 세력이 국민에게서 빼앗은 직선제 선거를 5.16이 국민에게 되돌려 주어 1963년 10월에 대한민국 헌정 사상 가장 민주적이었던 선거가 있었을 뿐이었다. 국민들 기억 속에 양김씨에 대해서는 요란하게 선거운동하는 것밖에 없으나,. 박정희 후보가 선거운동하던 모습은 없다. 오로지 선명한 정책 제시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올바른 정책에 호소하였다. 그는 정책 대결로 선거운동을 끌고 갔기에 그의 시대에는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다.

4.19와 5.16 한국 근현대사의 두 거대한 정변이었다. 4.19쿠데타의 필연이 5.16혁명이었다. 2공화국 때부터 4.19를 4.19의거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지만, 그 발단 동기에는 의문이 있다. 우선 나어린 학생들을 선동하여 마산 파출서에 돌을 던지게 한 것은 좌익의 소행이었던 듯하며, 3.15선거가 부정선거라는 주장은 민주당 신파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들은 마산에서 3월 15일 한 교육공무원이 사석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은 소속이 같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했지만 사실 대통령과 부통령은 정당 소속이 같아야 한다. 민주당이 집권한 후에 자기네도 대통령도 총리도 민주당에서 독점하지 아니하였던가!

2공화국의 문제는 윤보선 대통령도 장면 총리도 누구에게 국군 통수권이 있었는지 몰랐다는 것이며, 미국 등 외국 정부에서도 윤보선 대통령도 장면 총리 중 누가 외교의 주체였는지 몰랐다는 사실이다. 민주행정이 없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였기에 5.16군사혁명은 그런 상황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한 필연이었다.

사실, 2공화국 시절 청와대 비서관들도 5.16군사혁명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꼭 일어났어야 할 혁명이었다고 회고한다. 즉, 4.19 시위를 하였던 학생들이 언제 김일성 만세를 외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며, 북한으로 넘어가겠다는 그들의 행진이 언제 김일성에게 남침의 기회를 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 국가의 총체적 위기에서 적화통일을 막았기에, 민주행정의 틀을 튼튼히 하였기에,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필수 여건이었던 경제를 발전시켰기에 박정희의 5.16 혁명은 민주화 운동이었다.

http://cafe.daum.net/issue21

http://blog.paran.com/essay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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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1962년 윤보선 대통령 명의의 건국공로 훈장은 5.16 혁명이 쿠데타가 아니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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