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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은 잠재적 5.18폭도였다



위 동영상은 "정말 흥분한 상태였고, 시민들과 함께 싸우고픈 그런 충동까지 들었습니다"라는 김수환 추기경의 말과 더불어 시작된다. 즉, 광주사태 현장에 있으셨다면 5.18무장단체 혹은 시민군 중 하나가 되셨을 거라는 말이시니, 김수환 추기경은 잠재적 5.18폭도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충동을 느끼셨던 때는 아마 5.18무장단체가 전남도청을 강제 점거하고 해방구를 설치한 바로 다음날이었던 5월 22일 경이었을 것이다. 지난 2월 23일에도 광주에서는 20대 가장 최모(29)씨가 아내와 아들 두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렇다면, 수천 정의 총기가 정체 모를 사람들 손에 들려 있었던 그 당시의 광주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으며, 당연히 지도자는 시민군 무기 반납을 설득하여야 할 때 추기경께서는 당신도 현장에 있었다면 시민군이 될 용의가 있을 만한 충동을 느끼셨다.

더구나 추기경께서는 오늘날의 오천 만원에 해당하는 거금 천만원을 서신과 함께 1차 지원자금으로 헬기로 광주에 보내셨다. 당시 추기경 봉급으로 꼬박 이년을 모아야 하는 거금이었으며, 요즘 뉴스대로라면 추기경께서는 통장에 잔고를 남겨두시지 않으셨다고 하며, 정녕 시민군 지원 예산이 연초에 책정된 것도 아니었을진대 당시 성직자에게 거금이었던 그 돈은 어떻게 마련된 것이었나? 시민군 지원 예산을 반년 전에 미리 세워둔 것이 아니었을진대 누구에게나 의문거리가 아닐 수 없다. 아뭏든, 김수환 추기경이 서신과 자금을 광주 윤대교구에게 전달하기 위해 상무대로 보낸 군종 헬기를 5.18측에서는 계엄군이 헬기 사격하였다는 증거로서 이용해온 해프닝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김대중이 카톨릭 신자인척 하였기 때문에 광주사태와 천주교는 깊은 관계가 있었으며, 김대중이 또 한편으로는 문익환 목사와 손잡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민중신학 계열의 목사들이 광주사태에 연루되어 있었다. 즉, 진실 편에 서야 할 신부들과 목회자들이 유언비어를 유포시켰는데, 신부들이 특히 심하였으며, 아래 동영상의 조비오 신부가 대표적인 5.18 사기꾼들이었다. 5월 21일 시민군이 기관총을 헬기와 도청을 향하여 발사한 사건이 있었는데, 조비오 신부는 이것을 거꾸로 말하여 헬기가 기관총을 쏜 것이라고 사기쳤다. 조비오 신부는 심지어 1989년 광주청문회 때도 그런 위증을 하였다.



위의 1989년 2월 24일자 광주청문회 영상물에서 우리는 광주사태 "당시 항공여단장이었던 송진원 씨 등 6명은 오늘 광주에서 헬리콥터 기총 소사가 있었다고 주장한 조비오 신부와 이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어머니의 노래’를 방영한 최창봉 문화방송 사장, 김윤형 프로듀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라는 뉴스를 듣는다. 기총 소사는 본래 조비오 신부가 기관총 사격이라고 표현한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기관총을 쏜 쪽이 시민군이었으며 아래 사진이 바로 5월 21일 시민군이 헬기를 향하여 사격할 때 사용했던 그 기관총이다. 이런 기관총은 정찰용 헬기 안에 들어갈 수 없다. 조비오 신부가 아주 무식한 유언비어를 퍼뜨렸던 것이다.



그 사실을 "1995년 서울지검-국방부 검찰부의 광주사태 조사보고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일부 시위대는 전남의대 부속병원 12층 屋上에서 LMG 2정을 설치하고 전남도청과 軍헬기를 향해 사격을 했다.

14시 45분경 20사단 61연대장이 11공수여단과 병력을 교대하기 위하여 61항공단 203대대장이 조종하는 UH-1H 헬기를 타고 전 남도청 上空에서 공중 정찰을 하던 중 시위대의 對空 사격으로 6발이 헬기에 맞았다. 15시50분경 광주통합병원 상공에서 宣撫放送 을 하던 같은 機種의 61 항공단 방송용 헬기도 6발의 총격을 받았다. > (http://blog.daum.net/sionvoice/11045264)

즉, 진실은 시민군 편에서 헬기를 향하여 기관총을 쏜 것이었음에도 광주청문회 때는 거꾸로 말한 사기꾼의 큰 목소리가 이겼던 것이다. 무장간첩 사진 들고 나와 광주시민군 사진이라고 사기친 이해찬이 청문회 스타가 되어 출세길이 열렸던 것처럼 5.18측은 조비오 신부의 거짓말을 지원해 주었다. 그러면 무엇이 조비오 신부의 엄청난 사기극이 출발이었던가? 5.18측은 "민족과 역사의 심판"이란 제목의 그들의 증언록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이렇게 그때 나는 우선 도청 앞 분위기를 살펴보려고 밖으로 나왔다. 사제관을 나와 성당 앞 철문에 막 이르렀을 때이다. 헬기가 기수를 광주공원 쪽으로 향해 가면서 광주천 불로동 다리쯤의 상공에서 불빛이 50센티미터에서 거의 1미터 정도로 쭉 뻗으면서 '드드득 드드득 드드득' 세 번이나 갈기는 기총사격 소리가 들렸다.

혼비백산한 나는 반사적으로 담벽에 바짝 붙어서서 헬기를 응시하였다. 순식간에 헬기는 공원을 넘어 월산동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너무도 놀라 가슴이 뛰고 다리가 후들거려 성당을 나서지 못하고 사제관으로 되돌아갔다. 다른 신부들도 기관총소리에 매우 놀라 밖으로 나오면서 웬 기관총소리냐고 겁먹은 표정으로 묻는 것이었다. 나는 헬기에서 기총사격을 한 소리라고 말했다.> (5.18기념관 DB에서 자세히 보기 )

조비오 신부는 헬기에서 기총사격을 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는 단지 시민군 기관총이 헬기를 향하여 사격하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그는 동료 사제가 웬 기관총소리냐고 물었을 때 모르면서 아는 체해서는 아니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는체 하였다. 헬기 조종석에는 그 큰 기관총이 들어있을 공간이 없다. 그 기관총은 전남의대 부속병원 12층 屋上에 설치된 시민군 기관총이었던 것이다. 조비오 신부는 거짓말을 1989년 2월의 광주청문회 때까지 끌고왔을 뿐만 아니라, 1995년 검찰 수사로 조비오 신부의 사기가 전부 들통이 났는데도 여전히 "金永三정부는 광주의 진실을 밝힐 수 없다며 차기 정권에 그 처리문제를 기대하고 있었다" 등의 말을 하였다 (
http://altair.chonnam.ac.kr/~cnu518/board518/bbs/board.php?bo_table=sub6_03_01&wr_id=1039
).

그러나, 조비오 신부가 광주사태에 관하여 허위사실 유포를 했다는 사실이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에서는 뒤집어질 수 있었던가? 조비오 신부는 왜 침묵하는가? 이제라도 그의 거짓을 국민 앞에서 참회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천주교는 언제까지나 그의 거짓말을 감싸고 돌 것인가? 김수환 추기경은 조비오 신부한테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채 선종하셨으니 실로 한국 천주교의 비극이 아니던가? 김수환 추기경은 조비오 신부의 거짓말을 알아채지 못하셨기에 광주사태에 대하여 전세계적으로 거짓말하시다가 선종하셨으니 한국 천주교가 진실의 권위를 상실한 비극인 것이다!

이제 조비오 신부의 거짓말들이 이슈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 거짓의 역사 때문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진실에 근거하여 광주사태에 대한 판단을 내리셨던 것이 아니라, 유언비어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리셨다. 그리고 그가 1980년 5월 22일경 들었던 유언비어는 그때 우리가 들었던 유언비어와 똑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조비오 신부는 신부라는 성직을 거짓말을 하는데 이용했다. 그가 신부라는 성직을 광주사태에 관하여 허위사실 유포를 하는데 이용하였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천주교가 비호하던 광주사태 주동자 김현장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는 조비오 신부의 거짓말을 확대 재생산하여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이라는 유언비어를 제조하여 전국에 유포하였다.

김현장이란 5.18사기꾼이 누구던가? 바로 훗날 1982년 3월에는 "전두환 북침준비 완료"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문부식 등을 의식화시키고 선동하여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김현장이 광주로부터 가져온 ‘전두환의 광주살륙작전’이라는 유인물을 서울 봉천초등학교 정해숙 선생이 베껴 ‘가리방’으로 밀어 전국에 뿌렸다. 그리고, 그 유인물을 다시 서울의 김대중 홍위병들이 일명 "광주사태 속보" 대자보로 작성하여 전국 대학교 벽보에 불였다. 광주사태 유언비어는 이렇게 전국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던 것이다.

5월 18일과 21일의 두 다른 날자조차 구분 못한 "광주사태 속보" 대자보는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경상도 군인들로만 구성된 공수부대가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총을 쏘아 광주시민들이 곧 전멸할 것 같아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사건은 5월 21일 시민군 무장을 본 공수부대가 무장시민군을 피해 무등산을 타고 밤새 도보로 퇴각한 광주외곽 철수였다. 그런데, 그 유언비어 대자보에는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총을 쏘았다고 적혀 있었다. 실제 사건은 시민군 기관총에 헬기를 향하여 사격한 사건이었음에도 조비오 신부가 헬기에서 기관총 쏜 것이라고 거짓말하였을때 그 거짓말이 하루만에 엄청난 유언비어로 증폭되어 전국에 순식간에 유포되면서 당시 학생들과 일부 국민들을 속이고 기만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모두 미친 미개인들이 되었는지 모두 그 유언비어들을 맹신하였다. 이런 엄청난 유언비어 유포에 일차적 책임이 있던 천주교는 반성의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사기극 후속물로 5.18영상물을 제작하여 전국 대학교 강당과 성당에서 상영하는 활동을 1980년대 내내 하였다. 저 맨위 동영상에서도 시체 두 구가 수레에 실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두 구의 시체는 5.18불순세력이 5월 21일 새벽에 폭동 선동용으로 살해한 시신들이었으며 (
http://study21.org/518/video/5-20why.htm
, 5.18재판 당시 검찰 수사에서도 시민군 총기에 의한 사망으로 밝혀진바 있다. 즉 가해자는 5.18불순세력이었음에도 천주교 사기단은 그 영상물을 또 보여주고 또 보여주면서 광주시민 5,000명이 살해된 증거라는 유언비어를 추가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조비오 신부를 필두로 하는 천주교 일부 사기꾼들의 큰 목소리가 대세였으며, 그런 유언비어들에 속아주는 것이 대세였던 때에 김수환 추기경은 거짓말장이들 편을 들어주심으로 쉽게 존경받고 인기를 누리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정말로 진실 편에 서고자 하는 지도자라면 외로우셔야 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대중이 무지몽매할 때에 지도자는 대중에게 진실을 선도하기 위해 때로는 고독의 길을 선택한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 역시 당대에는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노예 해방 반대의 소리가 대세였던 때에 노예 해방을 외치는 것은 외로운 소수가 되는 길이었다. 링컨은 마침내 암살당하였을 만큼 그가 선택한 길은 외로운 길이었다.

자, 5월 21일의 기관총 발포 사건은 시민군 기관총이 헬기를 향하여 발포한 사건이었으며, 그후 도청 상무대로 날아든 군용헬기는 김수환 추기경이 윤대주교에게 편지와 서신과 금품을 전달하기 위해 보낸 헬기였다 (http://www.jnilbo.com/read.php3?aid=1234969200290452001 ). 이렇듯 시민군이 발포한 사건에 대하여 군용헬기에 누명을 씌운 문제는 우리가 눈감아줄 수 있다고 해도 그런 거짓말이 증폭시킨 유언비어, 즉 천주교가 비호하던 광주사태 주동자 김현장이 퍼뜨린 유언비어에 대한 조비오 신부의 입장을 우리는 물어야 하는 것이다. 아래 두 편의 동영상을 보라, 도대체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을 주장할 근거가 무엇인가?





5.18무장단체가 도청을 점령하여 공무원들을 추방시키고 해방구를 설치하였을 때 도청을 되찾아 원주인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책임이 당연히 군인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5월 27일 도청을 되찾아 공무원 출근이 가능케 한 후에 군인들은 서둘러 거리 청소를 한 후 모두 광주에서 철수하였다. 아래 뉴스는 6월 1일의 광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두 광주의 상처 치유를 원했다. 도대체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이라는 것이 있었는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유언비어를 지어내고 퍼뜨려 남에게 누명을 씌우는가?



거짓말과 유언비어가 지배하는 시대에 지도자만이라도 분별력을 잃지 말고 진실과 정의 편에 서야 한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이 오히려 전두환 어른에게 누명을 씌우는 일에 앞장 섰을 때 과연 그 시대는 밝은 시대였는가? 그리고, 최고 종교지도자가 분별력을 잃으셨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자들은 김수환 추기경과 전두환의 악연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러나 누명을 쓰고도 항의하지 않고 오래 인내하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답변에서 그의 덕망의 향기가 느껴지지 아니하는가!



당시 신문기사를 보라. 5.18무장단체가 5월 21일부터 점거하였던 전남도청이 27일 원주인에게 되돌려졌으며 수천 정의 탈취된 총기가 제자리도 돌려진 후 모두가 광주 상처의 빠른 치유를 원하며 전국 각지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하지 아니하였던가? 도대체, 언제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려 했다는 말인가?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린 이들이 역사의 승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도대체 그 누구인가?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합니다. 그리고 광주사태와 관련된 그분의 모든 선의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분을 추모하는 길은 광주사태와 관련하여 과연 무엇인 진실인지를 가려내는 것임을 또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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