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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야, 김대중 사조직이 유시민에게 건 괴전화였어?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는 광주시민군 모습

   1980년 5월 24일부터 시민군 상황실장이었던 박남선의 증언에 따르면 광주의 무장시민군이 광주시민들을 끓어앉히고 총구를 겨누는 위 사진 장면은 1980년 5월의 광주해방구에서 종종 목격되던 장면이었다.  박남선은 그의 상황일지로부터 그 한 장면을 이렇게 증언한다:

상황실에서 업무를 보고받고 있는데 윤상원이 뛰어들어와『2층 부지사실에서 시민ㆍ수습위원들이 무조건 무기반환을 결의한 뒤 시내 일원에서 무기회수에 들어갔다』면서 막아야 한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장병력 20여명을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가 2층 복도와 부지사실 문앞에 M16으로 무장한 병력을 배치시키고 내 지시가 있으면 무조건 전부 사살해버리라고 명령한 뒤 부지사실 문을 군화발로 차고 들어갔다.

시민군 대장 박남선의 증언 캡쳐
사만군 상황실장 박남선의 증언
(출처: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7_3006.html

  이렇듯 박남선의 증언에 따르면 무기 반환 거부의 주체는 윤상원이었다.  윤상원이 누구였던가? 광주사태 당시 전민노련의 중앙위원 겸 광주 지역 노동운동 총지휘자였던 윤상원은 김대중의 사조직 핵심인물이었다. 그는 소위 김대중의 외곽단체 국민연합 사무국장이었다. 25일까지는 시민군에게 무기 반납의 기회가 있었고, 만약 그때 무기반납 의사표시만이라도 있었더라면 27일 새벽의 무력충돌 및 그 전투로 인한 계엄군과 시민군 양편간의 희생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광주에서 김대중 세력의 전권을 행사하던 윤상원과 복면 쓴 불순세력이 24일과 25일에 무기 반납을 강하게 저지하여 27일 새벽의 전투로 치닫게 하였다.   

아래의 대한뉴스 제 1284호는 1980년 5월 10일 최규하 대통령이 중동순방길에 오르시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평화로운 출국 장면과 달리 많은 일이 이 날을 전후하여 있었다.  김대중이 최규하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과격시위를 선동하고 있었으며, 고건 정무수석은 비행기에 오르시는 최규하 대통령 손에 편지를 쥐어준다. 최규하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펴본 고건의 편지에는 "각하, 지금의 난국을 수습하려면 각하께서 하야하시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최규하 대통령 순방 비행기가 이륙할 때 북한이 5월 중하순에 남침한다는 정보가 중국에서 일본으로, 일본과 미국에서 한국으로 날라오고 있었다.  김일성은 남침하기 위해 먼저 군사동맹국 중국의 동의를 받아야 했는데, 5월 20~22일경 김재규 부하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때 남한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면서 남침할 것이라는 작전을 중국에 보고하였다.  당시 핑퐁 외교로 30년만에 모처럼 찾아온 미국과의 수교 기회를 놓치기 싫어했던 중국은 제2의 한국전쟁을 막아야 할 상황이었으며, 그래서 김일성이 알려준 남침 계획을 일본 정부에 알려주었고, 일본과 미국은 다시 그 남침 정보를 한국 정부에 제공하고, 미국은 두 대의 항공모함을 급파하였다. (미국이 코럴호 등 두 대의 항공모함을 한반도로 급파한 사실에 대해서는 이도형: 5-18전야 북한군 10만 해주 집결 특종 동영상 참고)  

    최규하 대통령이 중동 순방길에 오르시던 바로 그 날 서울대 학생회 임원들에게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괴전화가 걸려왔으며, 심재철과 유시민이 그 괴전화를 받았을 때 한홍구도 운동권 사무실에서 동석하고 있었다.  그 군부 쿠데타 유언비어는 순식간에 서울의 각 대학교와 전남대학교로 퍼져나갔는데, 당시 서울대 교수들조차 그 유언비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심재철과 유시민의 시위 선동을 지원해 주었다.

   바로 이 유언비어에서 한홍구의 "전두환 광주학살" 픽션소설이 유래하였기에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5월 10일 당시 군부 쿠데타 유언비어는 누가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괴전화 내용이 전혀 허황되지만은 않았던 것은 중국이 일본에 김재규 부하들이 김재규 사형집행을 즈음하여 쿠데타 일으킬 것이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김재규 군부 쿠데타설은 당시 김대중의 심복이었던 중앙정보부 총무국장 이종찬 등 극소수만 알고 있었고, 이 기밀이 유시민 등 학생 운동권에 괴전화로 전해졌을 때는 '김재규'라는 말은 빠지고 '군부 쿠데타'설로 전해졌다. 이것이 '김재규 군부 쿠데타설'이 '전두환 군부 쿠데타'설로 와전되는 첫 시작이었다.

    5월 19일 각 대학교에 붙은 대자보에서 처음으로 전두환이란 이름이 거론되었는데, 그 내용은 전두환 소장은 정치적 야망이 있으므로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쿠데타가 이미 일어났다면 대자보에서 "정치적 야망이 있는 인물"이라고 표현하였을리 만무하다.  이미 최규하 대통령이 곧 하야를 단안할 것이 언론에 보도되었던 당시 김대중이 서울과 광주의 운동권에 준 새 시위구호는 "신현확과 전두환 물러가라"였다.  

   그러면 5월 22일 민중봉기로 국가를 전복하여 최규하 대통령을 강제 하야시키고 스스로 통치자가 되려 했던 김대중이 학생시위로 보안사령관을 바꾸어치기 하려 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그 한 단서를 아래의 증언 문건에서 발견한다.

김대중 내란 수사관이었던 김대중 가문 가신 이기동씨 증언 캡쳐
김대중의 내란음모 증거
(캡쳐 출처: 신동아 1999년 7월호 http://www.donga.com/docs/magazine/new_donga/9907/nd99070020.html )

   여기서 김대중 내란 증거물 중 하나가 ‘예비내각’ 명단이다.  2월에 김영삼씨 신민당에 입당한다고 하다가, 대통령 후보 경선 문제를 가지고 김영삼 지지자들과 동교동이 각목 들고 싸우더니 4월에 입당 취소를 발표하였다.  민주주의는 정당 정치인데, 당 소속도 없고 아직 정당 등록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한 나라의 내각을 임명한다는 말인가?  정당이 없어 대통령 후보조차 될 수 없었던 김대중의 집권전략은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민중봉기였다.
  
   5월 22일로 예정되어 있던 김대중 내란 준비를 하던 서울 운동권 학생들 중 몇 명이 20일과 22일로 예정되어 있던 내란음모를 치안 당국에 알려주자 중정 총무부장 이종찬이 김대중의 가신 이기동을 시켜 김대중을 중정으로 연행하였으며, 김대중은 이종찬을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 최고 공신으로 여겨 1997년 김대중 정부 인수위원장에 임명하고 이어 김대중 정부 초대 국정원장에 임명하였다. 

    전두환은 김대중 세력이 퍼뜨리는 유언비어의 희생자이며, 지금도 5.18인민군 검사 채동욱이 앞장서서 온갖 비자금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그를 괴롭히고 있다. 그런데 5.18사기꾼들이 거짓말을 꾸며내 전두환에게 누명을 씌우는 수법의 창시자는 김대중이었는데, 김대중이 그렇게 한 이유의 한 단서가 1988년 광주청문회 때 그가 한 증언에 있다. 1980년 2월 김대중이 장성들을 찾아다니며 자기와 거래하자고 제의하였으며, 4월에 군부는 김영삼 편이 아니라 자기 편이라고 자랑하였다.  그런데, 전두환 장군은 자기와 거래하기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2월에 이학봉 중령을 찾아갔더니 "군인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며,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거래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전두환 장군의 정중한 거절을 전해 주더라고 한다.  따라서, 5월 22일의 내란 거사를 앞두고 김대중에게 유일한 장애물은 전두환 장군이었으며, 그의 국가전복 음모에 결코 만만찮은 장매물이었다.

   분명히 최규하 대통령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쿠데타는 김대중이 일으키려 하였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광주의 윤상원이 "전두환 쿠데타" 유언비어를 퍼뜨렸으며, 그 이후 어이없게도 그 왜곡된 시각에서 역사를 짜맞추는 과오가 되풀이되어 오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이 그러하였듯이 5월 중순 당시까지는 광주시민들도 전두환이란 이름을 전혀 들은 적이 없었으며, 윤상원도 김대중으로부터 "전두환 물러가라" 시위 구호로 시위 분위기를 띄우라는 지시를 받은 것 외에는 전혀 전두환이란 인물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었다.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협조한 공신들에게 보답할 것이라는 김대중의 거래 제의에 전두환은 정치에 개입할 뜻이 없음을 이학봉 중령을 통해 분명히 밝히고 면담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5월 19일 전국 대학교에 붙이기로 예정되어 있던 대자보에는 "전두환에게 정치된 야망이 있다"라는 표현이 삽입되어 있었다.  어찌된 일이었는가? 집권하면 자신의 심복 이종찬을 국정원장에 임명하고, 전두환은 정보부에서 얼씬도 못하도록 제거하는 것이 김대중의 의도였다.   

  요즘 5.18 북한개입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거니와 결코 우연일 수 없는 한가지 사실에 우리는 꼭 주목해 보아야 한다. 중국이 일본 내조국을 통해 한국 정부에 알려준 김일성의 남침 예정일과 김대중이 민중봉기로 국가를 전복하려고 예정했던 날짜가 일치하는 것이 결코 우연일 수 있는가? 남한에서 민중봉기에 의한 국가 전복의 기미가 보이면 남침하려던 김일성의 계획과 김대중이 민중봉기로 국가를 전복시키려 했던 내란음모가 동시에 발생하였던 것이 결코 우연일 수 있겠는가? 중국 정부가 알려준 것은 김일성이 남한의 자생 간첩조직 및 운동권을 이용해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면서 남침한다는 것이었는데, 5.18의 표어도 사회주의 혁명이었다는 것이 우연의 일치일 수 있는가?


   광주운동권은 꼬뮌주의자들이었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꼬뮌주의자들의 한결같은 목표는 사회주의 혁명이었으며, 북한식 사회주의의 은어가 '민족민주'이다.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5.18 성명서들이 그 증거물이듯이 5.18의 표어는 자유민주가 아니라, 자유민주 대항마 민족민주, 즉 사회민주주의였다. 광주사태 주동자들 중 깡패들을 제위하고 뭔가 이념이 있는 자들의 이념은 사회주의 혁명이념이었다. 그들의 사회주의 혁명 이념의 기록 문서들을 2011년에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으므로 이제 이것은 그들이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대중의 사조직의 핵심인물이었던 윤상원이 무장반란 준비를 구체화시키고 있던 때가 바로 이때였다.

윤상원의 동지이자 노동시인이었던 박노해(윤상원 평저 저자)의 증언 캡쳐
윤상원 평전
(캡쳐 출처: http://www.leejeonghwan.com/cgi-bin/read.cgi?board=reading&y_number=228 )

   김대중의 비등록 정당이었던 국민연합 사무총장으로서 윤상원의 임무는 5월 22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김대중의 내란 준비였다.  그런데, 이미 광주사태가 시작되기 열흘 전에 윤상원이 예비군 무기고를 습격하여 총기를 확보하고 TNT를 제작할 준비까지 치밀히 준비하였다. 이것이 진실이다. 이때 윤상원을 도우며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을 돕고 있었던 이재의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것을 감추기 위해 유언비어를 지어내었다. 5월 21일부터 23일까지 시민군 상황실장이었던 이재의는 21일부터 이런 유언비어를 외신 가지들을 찾아다니며 퍼뜨렸다. "군인들이 학생들을 죽이니깐 학생들이 봉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5월 23일 광주에 온 조갑제 기자는 이재의의 이 허위주장에 낚였으며, 1988년부터 3월부터 월간조선에 시민군측 유언비어들이 모두 진실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사들을 실었다. 5.18인민군 검사 채동욱 등 5.18 검사들은 간첩과 황석영이 공저한 책과 조갑제의 월간조선 기사를 자료로 삼아 피고인들을 기소하고 재판을 진행하였으며, 여기서 무장시민군이 헌법기관이라는 기괴한 법리가 탄생하였다.

    그런데 5.18 사기꾼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5월 21일 오후 갑자기 광주시민들이 저항권 행사로서 무장을 한 것이었는가?  위의 문건에서 보듯 김대중의 사조직이 광주사태 열흘 전에 이미 TNT 폭탄까지 제작하고 있었다.  사제 폭탄 하나로 얼마나 많은 인명이 죽을 수 있는가?  시민군이 전남도청 지하실에 설치한 8톤의 TNT 폭탄은 만약 계엄군의 목숨을 건 뇌관 분리 도움이 없었다면 광주시 전체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만한 소형 핵폭탄급이었다.  

   5.18측에서 답변을 주어야 할 또 하나의 수수께끼는 전남도청 점거의 목적이다.  중무장한 무장폭도들이 도청을 공격하니깐 광주경찰은 광주향토사단에 도청이 기밀문서를 안전한 곳에 옮길 때까지만이라도 도청을 사수해 달라고 요청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무장폭도들이 도청을 점거할 때 끝까지 남아있었던 이들은 대부분 윤상원이 평소 의식화시켰던 들블야학 청소년들이었는데, 심지어 청소년들조차 도대체 언제까지 도청을 점거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때 윤상원은 하루 이틀만 더 버티면 자기네 세상이 된다고 말했으며, 김일성은 광주사태가 하루 이틀만 더 끌었어도 절호의 남침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을 한탄하였다.

    윤상원은 하루이틀만 더 버티면 자기네 세상이 된다고 말했을 때 무슨 뜻이었는가?  김대중은 이 말에 감추어진 비밀이 무엇이었는지를 아는가?  

    1980년 5월 10일 최규하 대통령이 중동 순방길에 오르시던 날 저녁 몇 통의 괴전화가 심재철, 유시민 등 당시 서울대 3학년 운동권에 걸려와 "군부 쿠데타" 유언비어를 퍼뜨렸으며, '김재규 군부 쿠데타설'이 '군부 쿠데타설'로 와전된 것이 곧장 광주의 윤상원에게 전해졌고, 5월 18일 윤상원이 여기에 전두환이란 이름을 붙여 "전두환 쿠테타" 유언비어를 제조하였다. 만약에 전두환이 서울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서울 사람들이 알지 어떻게 광주 사람이 알 수 있겠는가?  "전두환 쿠테타" 유언비어는 처음에는 전두환이 서울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로 시작되었으며, 그래서 광주시민군의 본래 목표는 서울로 진격하는 것이었으며, 납북 여배우 최은희가 증언하듯 북한은 광주시민군이 서울에 도착하는 즉시 남침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고 있었다. 


   5.18 사기꾼 한홍구가 지난 33년간 "전두환 광주학살" 유언비어를 퍼뜨려 왔다. 그는 자기가 본 것을 말하는가? 아니다. 그는 광주 녹두서점에서 윤상원이 전화로 퍼뜨리는 유언비어를 들었을 뿐이다. 왜 성공회대 한홍구는 5.18 사기꾼인가? 그는 광주의 5.18 사기꾼들이 들려준 유언비어만 듣고 5.18 박사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5.18에 관한 한 그는 학문적 사기꾼이다.

   5월 18일 아침 윤상원이 갑자기 유언비어 퍼뜨리며 폭동을 선동하니깐 광주시가 전남도경에, 전남도경이 광주향토사단에 치안 유지 협조를 요청하고, 호남 출신 정웅 광주향토사단장이 예하 공수부대 2개 대대를 보낸 것이 어째서 "전두환 광주학살"이란 말인가? 안병하 전남도경국장이 자신의 육사 동기인 윤홍정 전교사 사령관에게 병력 지원을 요청한 것은 전두환과는 티끝만치도 관계가 없었다.

   유언비어가 처음 시작된 현장에 한구가 있었다. 유시민과 한홍구 등 당시 서울대 3학년 운동권이 괴전화를 받고 5월 11일 각 대학교에 삽시간에 퍼뜨린 유언비어는 김대중 세력이 5월 13일부터 대학가 가두시위가 시작되게 하는데 이용되었다. 그러면 1980년 5월 10일 최규하 대통령이 중동 순방길에 오르시던 날 무엇이 기자를 자처하며 서울대 운동권 사무실에 전화를 건 괴전화 발신자의 정체였는가?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김용순 대남선전부장 겸 정무차관이 간첩들을 동원하여 대남공작을 하고 있었으며, 당시 차수석 당서기인 김정일이 범북한세력의 광주사태 공작을 총지휘하고 있었기에 그 괴전화 발신자는 간첩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북한 개입설을 부정한다면 그 범위는 김대중 세력으로 좁혀지고, 그 괴전화는 김대중 세력의 자작극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5.18 유언비어에 거품이 많은 것과 전두환 비자금 유언비어에 거품이 많은 것에는 상관 관계가 있다. 1996년의 5.18 인민재판 때 관공서에 방화하고, 군 무기고를 습격하여 탈취한 무기로 교도소를 습격하며 무장반란을 일으킨 무장폭도들이 헌법기관이라는 해괴한 법리가 등장한 이유는 전두환을 처벌하기 위해서였다. 전두환에게 올개미를 씌울 목적으로 급조된 그 법리는 무장시민군은 헌법기관이요, 교도소 습격을 포함한 일체의 시민군 활동을 저지하는 것은 헌법기관 활동 방해이므로 헌정질서 문란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 해괴한 법리로 시민군의 무장반란은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전두환이 시민군의 무장반란 진압에 관여되어 있다는 증거가 털끝만치도 없으므로 그 법리로도 전두환을 처벌하는 것이 불가능하였기에 비자금 누명을 씌워 사형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동일 피고인에 사형 판결과 추징금 판결을 동시에 내라는 판결은 불합리하다.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추징금을 납부하는 것이 가능한가? 5.18 사기꾼 최환이 비자금 숫자 조작을 하였을 때 검찰의 목적은 비자금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사형을 구형하는 것이었다. 비자금은 애초에 없었으며, 없는 비자금을 받아내려 하지도 않았다. 비자금 유언비어의 거품이 아무리 크고 많아도 비자금의 실체는 없었다. 최환이 2205억원이란 숫자를 조작한 것은 사형을 때리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 그 실체는 없다.

    사기꾼이 말하는 금액에 사기당하는 것은 어리석다. 무슨 이유로 5.18사기꾼 최환에게 전국민이 우롱당하는가? 최환이 2205억원의 실체를 확인하였는가? 만약 2205원이란 비자금이 실제로 있었으며, 어디에 있는지를 검찰이 확인했다면 어째서 그때 추징을 못하였는가? 그런 비자금의 실체도 없었고, 실체를 확인한 적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지난 17년간 단 한번도 검찰은 비자금이 어디 있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비자금이 어디 있는지를 알지 못하였다는 것은 실체를 확인한 적이 없다는 것이요, 실체 확인 없이 언급된 2205억원은 조작된 숫자이다. 무엇이 두려워서 채동욱 검찰이 수사기록 공개를 하지 못하는가? 비자금 유언비어 조작 사실이 탄로날 것이 두려워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5.18인민군 검사 채동욱이 벌이고 있는 긋판이다. 어째서 채동욱이 끝없는 비자금 유언비어를 지어내는가? 이제 그는 1960년대에 이규동 장군이 산 땅이 1997년 이후의 비자금으로 산 땅이라는 유언비어를 또 지어내었다. 비록 그 유언비어로 인민재판을 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것은 처음부터 입증이 불가능한 주장이다. 검찰의 일은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 것이지 유언비어로 국민의 이목을 속이는 것이 아니다. 어째서 검찰이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유언비어만 지어내고 있는가? 이것은 검찰의 주장이 처음부터 거짓말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이 거짓은 어디로 굴러갈 것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거짓말의 눈덩이는 언제가는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것이기에 지금 국민과 5.18사기꾼들 양편에서 이 사건을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거짓말의 시작에 1980년 5월 10일 밤 유시민과 한홍구가 받은 괴전화가 있다. 세상에는 거짓말을 믿기를 좋아하는 미개인들이 있으며, 유시민과 한홍구의 입으로 전국 대학가에 쫙 퍼진 허위 정보는 지난 33년간 계속 거짓을 낳았다. 이규동 장군이 1960년대에 구입한 땅, 즉 전두환 소위가 아직 미혼이었을 때에, 월남에 있었을 때, 미국 유학 중이었을 때 이규동 장군이 산 땅에 1997년 이후의 비자금이 유입되었다는 가정은 애초에 그 입증이 불가능한 가정이며, 지금 대한민국 검찰이 이런 무모한 짓을 할 정도로 나라가 미쳐가고 있는 것이다.

     한홍구는 지난 33년간 광주사태 유언비어 전도사 노릇을 해왔는데, 신성한 성공회대학교가 거짓말을 전도하는 학교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동안 유언비어만 듣고 광주사태를 말하며 논했던 한홍구가 이제는 자진이 목격한 1980년 5월 10일의 괴전화 사건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그 괴전화 발신자는 누구였는가? 간첩이었는가? 아니면 동교동 자작극이었는가?

전두환의 미환수 통치자금 vs 시민군의 미회수 실탄

전두환 비자금으로 잘못 알려진 광개토대왕 프로젝트


   글 작성일: 2013년 8월 20일

시민군 기관총
시민군 실탄 환수 특별법을 제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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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반란을 일으킨 5.18폭도들의 지프차 환수 특별법을 제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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