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 연구사료 광주사태 33주년 기념 신간 5.18 연구도서 "역사로서의 5.18"
역사로서의 5.18 제1권: 광주사태의 발단과 유언비어 역사로서의 5.18 제2권: 5.18 무장봉기 주동자들의 실체 
역사로서의 5.18 제3권: 광주청문회에서 드러난 5.18 역사로서의 5.18 제4권: 5.18재판 법리의 모순 
실탄 반납 안 하면 5.18 무장폭도 They are 5·18 armed rioters if they do not return bullets
광주사태의 발단과 유언비어 광주사태 동영상
광주사태 사진
5.18 무장봉기 주동자들의 실체

광주사태 진실탐구 토론장

광주사태 증언자료 카페

2013년 새 5.18 관련자료

광주청문회에서 드러난 5.18 5.18재판 법리의 모순  

전두환의 미환수 통치자금 vs 시민군의 미회수 실탄


전두환 대통령이 1981년부터 1988년까지 7년간에 걸쳐 경제 건국에 사용한 통치자금을 환수하겠다는 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1980년 5월 21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시민군이 사격한 실탄 십 만발도 회수가 가능하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렇다면, 미회수된 시민군 실탄 십 만 발도 회수하자! 1980년대에 경제 건국에 사용된 통치자금을 환수하기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을진대, 1980년 5월 시민군이 사용한 십만 발의 실탄을 환수하기 위한 특별법도 제정하자!

1. 객관적 진실에 위배되는 조갑제 기자의 주장
조갑제 기자는 그가 광주사태를 직접 취재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다. 광주사태를 직접 취재한 자들은 북한 간첩들이었지 조갑제 기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1980년 5월 21일 시민군이 전남도청을 함락한 후에야 비로서 광주에서 심상치 않은 사태가 발생하였으며, 그 사태가 광주사태라는 개념을 가질 수 있었다. 조갑제는 수백 명이 광주사태를 취재하였다고 주장하지만 문제는 그 수백 명이 누구였느냐이다. 21일 저녁에 500 여명의 무장시민군이 전남도청에 입성하는 장면을 취재하여야 광주사태를 직접 취재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 기자들 중에 단 한 명도 그 광경을 취재한 이가 없었는데 어떻게 수백 명이 취재하였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 북한 미디어들이 그 광경을 생중계하고 있었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간첩들은 광주사태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월 23일야 광주에 도착하였던 조갑제 기자는 광주사태를 직접 취재한 것이 아니라, 5.18 사기꾼 원조로부터 유언비어를 듣고 있었으며, 그 유언비어에 쩔고 세뇌되고 있었다. 조기자가 23일 도착한 광주는 21일의 광주사태 현장이 아니라, 시민군 점령 지역 혹은 광주 해방구였다. 광주 해방구는 유언비어를 말하는 것만 허용되고, 사람들이 시민군이 듣기 싫어하는 진실을 말하면 시민군에게 체포되는 무법 천지였다. 그곳은 극단적으로 편파적 주장만 설치던 곳이었다. 여기서 5.18 사기꾼들은 객관적인 진실을 말하지 않고 선동적인 악성 유언비어만 말했다. 그러면 그런 편파적이고 치우치고 사실과 다른 말만 듣고 낚이는 것이 취재인가? 유언비어를 먹고 마시고, 유언비어에 심취하고 중독되는 것에는 ‘현장 취재’라는 어휘가 적당하지 않다. 유언비어에 낚인 것 말고 조갑제 기자가 광주사태 현장에서 취재한 것이 있으면 보고 싶다.

조갑제 대표는 지난 5월 25일 부산일보사에서 개최된 조갑제 월례강좌에서 "광주사태를 취재한 사람이 수백 명인데 내가 알기로는 단 한 사람도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국가기관이 다섯 번 조사를 해도 북한군 북자도 안 나온다." 이 말을 할 때 도대체 그의 정체성이 무엇이기에 좌익 혹은 5.18 사기꾼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말이 되었는가? 5.18 사기꾼 미디어 뉴스타파가 최근 제작한 동영상 '5.18 진실을 말하다'에서 조갑제의 "국가기관이 다섯 번 조사를 해도 북한군 북자도 안 나온다" 이 말을 신주 받들 듯이 인용하기가 무섭게 동영상 18분에서 "김대중 등 20 여명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내란을 획책하였다"는 말이 나오고, 이어 동영상 18분 30초에서 "북한 사주설과 맥을 같이 한다." 이렇듯 자기네 허위 주장에 유리하니깐 조갑제의 말을 인용하고서도 금방 그 말을 뒤집어 광주사태 당시 이미 국가기관이 북한 사주설을 발표하였음을 언급한다.

광주사태가 시작되기 두 달 전에 이미 국가기관은 문익환 목사가 인편을 통해서 북한의 사주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그런 국가기관 기록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데, 어째서 조기자는 이런 기본 자료를 살펴보는 성의조차 없이 ‘북’자도 안 나온다고 단정한다는 말인가? <민청협> 조직을 동원하여 광주사태를 주동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관련자 문익환 목사가 북한의 사주를 받고 있었으며, 이것은 탈북자들의 증언과 국가기록이 일치하는 것이다. 문익환 목사와 북한의 관계에 대해서는 탈북자들이 아는 바가 있는 것인데, 그들의 그런 증언이 조기자에게는 불편한 진실이 될 하등의 이유가 있는가?

조갑제 기자 눈에 간첩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간첩이 없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간첩이 나는 간첩이오 하며 나팔 불고 다니는가? 지금 남한 사회 내에 간첩들이 있는가 없는가? 우리 눈에 안 보일 뿐이지 수 만 명의 간첩들이 사회 각계 각층에 침투하여 있다. 그럼에도 간첩이 안 보이니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분명 남한 사회 내에 간첩들이 있다. 만약 조기자는 멀리서 수천 혹은 수만 명의 군중을 보고서 그 중에 누가 간첩이고 아닌지 식별하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지난 수 십 년간 간첩을 몇 명이나 신고하셨는가? 광주에 간첩이 없었다는 조기자의 주관적 주장과 달리 명백한 객관적 진실은 광주사태 공작을 하는 간첩들이 광주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이것은 더 이상 조기자가 거짓말로 억누를 수 있는 진실이 아니다.

광주시민들도 간첩이 있다는 낌새를 채고 있었다. 간첩들이 광주시민 혹은 시민군 복장을 하고 있으니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하나 시민들이 소리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대다수의 광주시민들이 북한의 광주사태 생중계 방송을 들으면서 북한 간첩이 광주에 있는 것 같다고 '북'자를 말하였는데, 조갑제 기자만 광주에서 북한 방송을 듣지 못했다는 말인가?

이어 조갑제 기자는 "또 북한군이 개입했으면 북한군 손에 죽은 사람이 있을 것 아니냐. 죽은 사람 없다"고 말했다. 계엄군에게는 M-16 밖에 없었던 데 비해, 시민군은 M-16 과 칼빈소총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총기들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래서 칼빈소총 사망자들은 시민군 총에 희생된 것이고, 전체 총상 사망자들 중에서 시민군 총기에 의한 사망자들이 가장 많았다. 광주사태 기간 동안 시민군은 십 만 발의 총탄을 갈겨댄대 비해 계엄군은 몇 발 쏘지 않았다. 5월 21일 도청을 사수하고 있었을 때는 광주향토사단 경계병력이 철수하면서 넘겨준 실탄 이백 발밖에 없었고, 27일 새벽 도청 시민군 무기 강제 회수 작전 때도 시민군 선제 사격에 대한 자위 수단으로만 실탄을 사용했었기에 계엄군을 별로 실탄을 사용하지 않고, 시민군쪽에서만 광주사태 기간 동안 십 만 발의 실탄을 사용하였다. 오천 정의 시민군 총들이 총기 당 평균 20 발의 실탄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십 만 발의 시민군 총탄이 날아갔는데, 아무도 죽은 사람이 없었다는 말인가? 시민군 총탄에 희생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조갑제 기자가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려 십만 발의 실탄 사용은 도시 게릴라전 규모의 실탄 사용이다. 시민군이 광주 해방구 밤 거리에서 어찌나 많은 총을 쏘아 대었던지 그때 놀라 여전히 트라우머에 시달리는 시민들이 있다고 한다. 광주의 민간인들 단독으로 도시 게릴라전 규모의 총탄을 낭비하였던 것인가 아니면 외지로부터 도시 게릴라들의 침투가 있었던 것인가? 광주시민으로서 광주주재 동아일보기자였던 김영택도 시민군 중 오백 명은 외지인들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광주에서 복면 쓰고 총을 난사하며 활개치던 게릴라들이 광주시민들이라고 우겨야 할 이유라도 있는가? 김기자처럼 복면부대는 외지인들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광주의 명예에 이롭지 않은가?

2.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 사용된 통치자금을 강탈하려는 도둑심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정치자금에 대한 1995-96년의 수사기록이 공개되면 재확인되겠지만 정치자금 수입과 지출이 분명하므로 남은 정치자금은 없다. 경제건국 대통령 전두환에게 최소한의 통치자금은 필요하였다. 경제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전두환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에 찬란한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경제 건국 전략에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물 하나를 잘 짓기 위해서도 막대한 설계비용이 들어간다. 하물며 경제 건국을 위한 설계에 비용이 들어가지 않겠는가? 한국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던 한국 제품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제품이 된 것은 수출 시장이 있기 때문이며, 1980년대에 오대양 육대주에 수출 시장을 연 것은 전두환 대통령의 수출 전략이 적중하였기 때문이었다. 전 대통령은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 브레인들이 최상의 경제 및 수출 전략을 발전시키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투자하였으며 그래서 통치 자금이 필요하였다. 오늘날 한국인이 누구 덕에 밥을 먹고 사는가? 전 대통령의 현명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투자였다. 5공화국의 목표가 수출 시장을 여는 것이었으며, 그 시절 한국 기업이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수출 정책이었다.

전두환 정부처럼 경제 발전에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실천하는 정부 정책에 기업도 기여하여야 할 의무가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의 기업에 있다. 이것은 부패가 아니다. 5공화국 출범 전까지의 한국의 재무구조는 계속 외채가 늘어나는 국가였기에 기업들이 좁은 국내시장에서 혈투를 벌이는 것만으로 생존할 수 없는 나라였다. 외화를 벌어들이는 획기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원유 수입할 외화가 없어 모든 자동차와 기차가 멈추고, 전기 공급이 끊어져 금방 한국은 19세기 이전만도 못한 상황으로 전락할 위기 상황에서 5공화국이 출범하였던 것이다. 5공화국은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목표와 의지를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최상의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한강의 기적’(The Miracle of Han River)라는 말이 전두환 대통령 시절 등장하였으며, 전 세계 명문 대학이 앞다투어 한국학을 신설한 때도 바로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다. 그만큼 전두환 대통령의 수출 전략이 전세계 경제학자들이 감탄하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런 때 국가는 그런 정부에 통치자금을 후원해 줄 의무가 있으며 기업 총수들도 일차적으로 국가를 위해서 그 좋은 정책 후원금을 기여하였다.

어느 나라에서나 기업이 해외로 진출하려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데, 아직 기업들에 수출 경험이 없는 개발도상국에서는 더욱이나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였다. 한국인들도 국산품을 꺼리던 시대에 개 기업이 수출 시장을 뚫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였다. 그러나 전두환의 경제팀은 한국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업은 그 아이디어, 그 전략, 그 지원이 필요하였다. 초등학교 학력의 정주영 씨 등이 처음부터 국제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두환 대통령이 수출 대상국에 기업 총수들을 수행하고 다녔으며, 국제 정세와 수출 전략에 밝은 경제 브레인들이 수출 시장 확보 전략을 알려 주었다. 즉, 전두환 식이 있었기에 정주영의 신화, 김우중의 신화, 삼성의 신화가 가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한강의 기적의 신화의 비결은 전두환이 해외 최고의 경제 석학을 한국으로 불러들인데 있었다. 이것이 5공화국 통치자에게 통치자금이 필요하였던 이유였으며, 한국 기업의 수출 전략을 위해 수고하는 그 경제석학들의 수고비를 지원하는 것이 그때는 기업이 애국하는 방법이요 기업을 키우는 방법이었다.

자본주의 국가경제의 한 메커니즘이 정경유착이며 이것은 필요악이다. 만약 정경유착의 고리가 한 나라를 가난하게 하면 그것은 부패이다. 한국보다 훨씬 잘 살던 필립핀이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것은 정경유착의 고리 때문이다. 지방 자치 통치자들이 국가 경제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치부에 목표를 두기 때문에 국가 경제가 무너졌다. 전두환 대통령의 통치로 그가 부자가 되고 나라가 가난하여졌다면 그것이 부패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기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퇴임 후 연희동 장인 집에 얹혀살았다. 요즘 언론이 지방세 미납에 대한 언론 플레이를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에게 지방세 징수 대상이 없었다. 그에게 유일한 재산은 국가가 경호동으로 쓰던 별채였는데, 2003년 노무현 정부가 경호동을 차압하여 경매에 붙이고, 박원순이 시장이 된 후 악랄하게 그 경매된 재산에 지방세를 부과하였다. 이것은 쉬운 비유로 설명하면 어떤 날강도가 어떤 사람 단칸방을 강탈하여 팔아 넘겨 자기 호주머니에 넣은 후 차익에 대한 지방세를 내라고 한 것과 똑같다. 노무현 정부 강도가 강탈하여 얼마를 받고 경매에서 팔았던 간에 강도에게 차압당한 쪽은 뺏긴 것도 억울한데 뺏긴 물건에 대한 지방세까지 내야 한다는 말인가?

사실 노무현 정부 강도가 그 못된 짓을 하기 십년 전에 경호동에서는 또 하나의 사연이 있었으니 바로 심재철 의원의 생명을 구해준 사건이었다. 1993년 6월 30일 새벽 5시 30분에 당시 MBC 기자였던 심재철은 양재동에서 심한 교통사고를 당하여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대수술을 받았다. 그의 심한 출혈과 패혈증 때문에 이것은 엄청나게 B형 피를 많이 요구하는 수술이었다. 당황한 의사는 병원 바깥 거리로 뛰쳐나가 B형 피를 외쳤다. 연대 총학생회에서는 심재철을 위해 헌혈을 호소하는 교내 방송을 내보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뜻밖에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원들과 경호동 전경들이 심재철을 위해 헌혈하러 달려왔다. 세브란스 병원 바깥 거리에서 심재철에게 B형 피가 필요하다는 외침을 듣고 연희동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경호원들과 전경들을 모두 보냈던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을 괴롭혔던 심재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경호원들을 보내는 사이 영화 ‘26년’과 같은 암살 시도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기 목숨보다 심재철이라는 한 국민의 생명을 더욱 소중히 여겼고, 그래서 오늘의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있는 것이건만 한나라당은 노무현이 차압하여 경매에 넘기고 박원순이 그 차익에 지방세를 때린 그 지방세 미납을 여론몰이하며 전두환법을 통과시켰다. 자기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한 운동권 출신의 생명을 구한 전두환의 착한 성품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비록 자기를 괴롭히던 자였을지언정 한 사람의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던 전두환에 비해 악법을 통과시켜 다시금 그를 괴롭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얼마나 배은망덕한가!

김영삼 정권의 인민재판 판사들은 경제와 정치에는 문외한들이라 후진국 대한민국이 어떻게 선진국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전혀 그 역사적 배경을 모르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경제 건국 대통령이 대한민국 경제를 성장시키는데 소요한 비용 전액을 추징하였다.

불과 몇 년만에 한강의 기적의 신화를 이룩하며 가난한 나라, 빚에 쪼들린 나라가 부강한 나라, 빚을 다 갚고도 외국에 꿔 주는 나라로 발전시킨 대통령이 자기는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고 여전히 장인 집에 얹혀 살았을 때 그것은 부패가 아니라, 정경유착의 순기능이다. 퇴임하기가 무섭게 아방궁같은 호화저택들은 지은 김대중이나 노무현과 달리 박정희 전두환 두 대통령은 집 한 채 마련하지 않았다.

5공 시절 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서민 경제가 풍요로워질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비결은 정치자금 창구 단일화였다. 만약 어느 나라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5공처럼 정치자금 창구를 단일화하여야 한다. 무식한 좌파는 노동임금이 싼 후진국은 자동적으로 외국 기업이 몰려와 부자 나라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치자금 창구가 다원화되어 있으면, 즉 말단 공무원으로부터 시작하여 고급 공무원에게까지 뇌물 혹은 돈 봉투를 갖다 주어야 하면 서민들은 작은 공장 하나 지을 엄두도 못 내며 외국 기업들도 좀처럼 투자하지 못한다. 그런데 5공 시절에는 정치자금 창구가 청와대로 단일화되어 민정당이나 공무원들은 정치자금을 거둘 수 없었으며, 그 대신 청와대가 민정당 운영비와 공무원 격려비를 지원하였다. 그래서 5공 시절에 사업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기업 편에서도 각처 각급 공무원들에게 수십 개씩의 떡값 봉투를 갖다 주어야 하는 부담이 없어져서 비용이 크게 절약되었다.

5.18 인민재판 판사들은 역사와 정치와 경제에만 무식하였던 것이 아니라, 초딩 산수 셈법도 모르는 자들이었다. 단일화된 정치자금 2205억원은 5대양 6대주에서 수술시장을 확보하는데, 7년간 민정당 운영비와 가난한 서민 돕기와 공무원 격려 등메 모두 지출되었다. 경제 건국과 나라 살림을 위해 모두 지출하였는데, 5.18 악질검사 채동욱이 지금 도대체 무엇을 환수하겠다는 말인가?

김영삼과 김대중 양김씨는 선거 때마다 금권선거에 선거자금 흥청망청 허랑방탕 1조원씩 뿌렸다.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왔는가? 그들에게도 정경유착이 있었다. 양김씨가 기업가들로부터 뜯어낸 선거자금이야말로 뇌물이었다. 삼척동자도 아는 산수 셈법이 있다. 전두환 대통령이 후진국 경제를 불과 7년 만에 선진국 경제로 발전시키는데 소요된 통치자금의 무려 다섯 배씩을 양김씨는 그들의 금권선거 때마다 썼다.

5.18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96년은 양김씨 시대였다. 양김씨가 여당과 야당 총수로써 나라를 통치하였다. 양김씨 통치가 민주화의 완성이었는가? 아니다. 그들의 합작품이 서민을 국빈자로 몰고간 IMF 환난이었다는 데서 그들은 IMF 주범들이었다. 경제주권을 팔아넘기려 한 IMF 주범들은 퇴임후 거액의 연금을 받고, 경제건국 대통령에게는 연금을 주기는커녕 장인이 딸 이순자 여사와 외손주들에게 상속한 재산마저 주기적으로 강탈하는 것은 이상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면 이렇듯 죄인 취급을 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도둑놈들이 제정한 정치자금 환수법이 도둑놈들이 받은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보려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3. 미회수된 시민군 실탄 십 만 발
이제 우리는 이런 날강도짓하는 자들에게 5.18 시민군이 발사한 실탄 십 만발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여야 한다. 광주사태가 일어난지 어언 33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미환수 실탄 십 만발을 반납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폭도라는 딱지가 붙어 마땅하다. 한 도시에서 열 발의 실탄만 난사하여도 폭도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경제건국에 사용한 통치자금이 환수대상이라면 시민군이 난사한 십 만발의 총탄 역시 환수 대상이다.

어느 강도가 당신의 전 재산을 강탈하였다. 그러고 숨긴 재산이 있다며 그 강도가 당신의 친인척을 수사한다고 하여 숨긴 재산이 나오겠는가? 우리는 덧셈과 뺄셈의 기본 셈법을 안다. 날강도 중에서도 악한 강도는 자기가 지어낸 거짓말을 맹신하는 것이다. 이런 날강도들에게 자기네가 지어낸 거짓말은 하나의 신앙이다. 어떤 날강도가 당신의 전재산을 강탈한 후에도 숨긴 재산이 있다며 친인척 수사를 할 때에 당신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자금을 받지 않고 통치할 수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 정부가 제정한 악법으로 후대의 정부가 박 대통령 재임시절의 정치자금도 추징해야 하는가? 박근혜 정부가 악법을 제정하였다고 없는 전두환 전 대통령 정치자금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재임시절 경제 건국을 위해 다 써버린 돈에 대해서는 환수가 불가능하다.

5월 21일 아침 운전이 미숙한 시민군이 실탄 30 여만발을 탈취하느라 시민군 피해가 컸다. 대형 교통사고들을 잇달아 내며 여러 명이 시민군이 타박상으로 목숨을 잃었다. 시민군은 총기와 실탄을 탈취하러 다니다 시민군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들의 관을 23일 상무관으로 운구해 오면서 가해자를 뒤바꾸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는데, 그 날 광주에 도착한 조갑제 기자는 그 유언비어에 낚여 그 악성 유언비어 유포 매개 역할을 해왔다.

광주 시민군이 1980년 5월 21일 불과 네 시간만에 44개 무기고를 털어 탈취한 30 여만 발의 실탄 중 십만 발도 환수가 불가능하다. 광주사태 33주년에 5.18 단체들이 큰 소리칠 수 있으려면 이제라도 십 만발의 미회수 실탄을 반납해야 한다. 반납하지 않으면 이제 역사 기록에서 시민군이 21일부터 27일까지 한 주도 채 못 되는 기간 동안에 십 만 발의 실탄을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고, 그러면 이것은 그들이 폭도였다는 증거가 된다.

외지인은 없었고 광주시민이 십 만발을 발사하였던 것이라는 주장은 광주시민은 폭도라는 말과 같다. 인구 팔십 만의 도시에서 민간인들이 단 며칠 간에 십 만발이나 되는 엄청난 실탄으로 사격을 하였다면 민간인 열 명 당 한 명 이상이 총을 쏘았다는 얘기인데 그러면 폭도들이 아닌가? 미국에서는 민간인이 총 열 발만 쏘아도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대형 사건이다. 민간인이 자꾸 총을 쏘면 점점 인명 피해가 많아진다. 시민군이 십만 발의 총을 쏘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면 시민군이 남은 몇 십만의 실탄은 강제 회수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닌가? 총기 난사하는 민간인 무장단체로부터 무기와 실탄을 강제 회수하는 것이 더 이상의 인명의 희생을 막는 길이다. 5월 27일 새벽의 시민군 무기 및 실탄 강제회수작전은 불가피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반란이란 말인가?무장반란을 진압하는 것이 반란이라는 5.18 재판 판결을 어느 국민이 납득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김영삼 정권의 정치재판이었다 하더라도 이런 엉터리 판결을 내린 5. 18 재판 법관들은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조갑제 기자 말대로 북한군이 쏜 총에 죽은 사람이 없으면 결론은 하나다. 시민군이 그 많은 광주시민들을 죽였다. 언제부터 5.18사기꾼들이 보수논객 조갑제 대표의 말을 신주 모시듯이 받들었는가? 5.18 사기꾼들에게 한가지 반문할 것은 그러면 광주시민이 광주시민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것이 북한군이 광주시민을 쏘아 죽였다는 것보다 광주에 명예로운가?

이어 조갑제 기자는 “해안경비를 얼마나 철저하게 합니까? 모래사장을 싹 씁니다. 싹 쓸어서 쓸어가지고 그 다음날 새벽에 발자국이 있으면 그걸 추적한다고 부대가 총동원되고 했습니다. 단 한 사람도 들어올 수 없는 완벽한 밀봉체제였고...”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광주사태 당시 간첩들 침투 루트였던 서해안 상황이 어떠하였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하는 말인가?

시민군이 점령한 광주 해방구에 단 한 명의 국군이라도 들어올 수 있는가? 조갑제 기자는 5월 27일 이전의 광주 해방구에서 단 한 명의 국군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21일 광주가 해방구기 됨과 동시에 시민군이 해남과 목포와 진도와 완도를 정복하여 해방구 상태가 되어 단 한 명의 국군도 들어올 수 없는 지역이 되었다. 목포에 단 한 명의 국군도 없었는데 도대체 누가 철통같이 지켰다는 말인가? 5.18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이며, 그때 우리나라가 어떤 위기 상황에 처해 있었는데, 전혀 서해안에 가 보지도 않고 (북한군인지 시민군인지 모를) 무장세력에 서해안이 유린 당한 상황도 전혀 모르면서 어찌 조갑제 기자는 여태껏 경솔한 허위 주장으로 국민을 기만하며 여론을 현혹하고 있으신가?


http://www.study21.org/518/
 

광주사태의 진실탐구 자료실

전두환 비자금으로 잘못 알려진 광개토대왕 프로젝트

황석영과 조갑제의 5.18 유언비어 원전 “찢어진 깃폭”

간첩과 황석영의 공저한 5.18 도서

시민군 실탄 환수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
시민군 실탄 환수 특별법을 제정하자!

시민군 실탄 환수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
무장반란을 일으킨 5.18폭도들의 지프차 환수 특별법을 제정하자!

글 작성일: 2013년 8월 8일

 

 




[BBC 동영상 뉴스][미주 한류][미국시사해설][영화][동영상][광주사태 사료][도서 검색][광주사태 관련 새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