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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단체들 고소 사유의 모순점들
518광주민주화운동 야기한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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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민주화운동 야기한 전두환



   (재)5.18기념재단과 5월 제단체는 지만원 박사를 지난 5월 30일 광주지검에 고소했다"고 6월 3일에 밝힌바, 5월 단체는 고소장을 통해 "전사모, 역사학도의 시사토론 글방, 광주사태(화려한 휴가) 증언자료 등 3곳의 인터넷 사이트와 지만원씨가 5.18민주화운동을 광주 사태라고 지칭하고 있다"며 고소 사유를 밝혔다. (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080603_0007811324 )

   본래 "5.18민주화운동"이란 칭호는 노태우스러운 혹은 물태우스러운 칭호이다. "5.18민주화운동"이란 칭호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사용되었는데,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5.18민주화운동"으로 승격시키면서 왜 그 칭호를 사용해야 되는지 이유를 제시해 주지 않고 승격시켰기에 물태우스러운 명칭이다. 그러나, 이것 한가지는 분명하다. 5.18민주화운동이란 칭호를 쓰지 않으면 소송을 걸라는 것이 그의 취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이 의문이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5월 단체는 노태우 대통령을 고발하였으며, 그들이 고발한 대통령이 물려준 물태우스러운 명칭을 그토록 선호하는가?

   본래 광주사태라는 명칭은 훗날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이 된 서울 운동권이 정한 명칭이었다. 1998년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한화갑, 이해찬 등 수십 명의 동교동 사람들에게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포상을 한 것이었는데, 그들이 시민군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광주사태 주동자들은 서울의 운동권에게 왜 함께 전국적 민중봉기 일으키기로 하고 가만히 있느냐며 유언비어를 계속 전해 주었다. 그러나, 서울대 운동권은 광주의 시민군처럼 무기탈취하여 관공서를 점령하는 대신 광주사태 대자보를 제작하여 대학가 벽보에 붙이거나 유인물을 시내에 뿌렸는데, 그때 그 대자보 명칭을 "광주사태 속보" 대자보라 불렀으며, 언론이 그 명칭을 그대로 사용해서 광주사태라 불리게 된 것이었다. .

   광주사태든 518민주화운동이든 광주에서는 그런 용어들이 사용되지 않았다. 폭동 주동자들이 사용한 명칭은 "전라국"이었다. 전라도에 해방구를 설치하여 전라국을 대한민국으로부터 독립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의 의문은 이것이다. 당시 그들이 정한 명칭이 "전라국"이었을진대, 왜 그들이 정한 명칭을 저버리고, 그들이 1995년에 고발한 노태우 대통령의 물태우스러운 칭호를 사용하는가? 분명한 것은 광주사태 당시 그 아무도 그 물태우스러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10년 후에 그 물태우스러운 용어가 공식 명칭이 되리라고 그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처음으로 광주사태라는 명칭을 만들어 냈을까? 아마 그 비밀은 한홍구가 간직하고 있는 비밀일 것이다. 따라서, 한홍구가 참으로 과거사에 솔직해지려면 서울대 운동권 중 누가 광주사태라는 명칭을 제안하였는지 밝혀야 한다. 5월 22일로 예정되었던 김대중의 전국적 민중봉기를 광주의 운동권과 함께 주동하였던 자들이 만든 용어였기에 한홍구는 그 용어의 출처에 대하여 침묵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지만원 박사께서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사용하다 5월 단체에 고발당하셨으니, 이제 광주사태 용어의 유래에 대하여 한홍구는 밝혀줄 책임이 있다. .

   1980년 5월 22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전국적 민중봉기 주동 세력 중 서울의 운동권이 처음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사용한 선례에 이어 우리는 1995년 12.12-5.18 재판 고소 · 고발인들이 다시 그 용어를 사용한 선례를 발견한다. 그들의 고소사유를 간단히 요약하면 전두환과 노태우가 광주사태를 의도적으로 야기했다는 것이다. 누가 광주사태를 야기하였는가? 전두환과 노태우가 광주사태를 야기했다는 것이 5월 단체의 주장이다. 그런데, 만약 광주사태라는 명칭을 5월 단체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란 의미로 사용하여 두 전 대통령을 고소하였던 것이라면 그 논리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야기하였다는 의미로 귀결된다.   

   그런데, 정말로 노태우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야기하였는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야기하면 자기가 8년 후에 6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 보내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사용하자고 공식 발표하게 될 것을 내다 보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야기하였는가?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는가? 아니면 5월 단체의 픽션 소설인가? 정말로 노태우가 장구치고 북 쳤는가? 전두환과 더불어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야기하였으면서도 전두환만 백담사에 유배보냈는가? 노태우가 실로 그토록 유능한 인물이었는가?

   광주사태라는 용어를 제조해낸 서울의 5월 시위 주동자들은 또한 광주학살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한홍구는 단 한번도 "노태우 광주학살"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전두환 광주학살"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의 과거사위원회도 노태우가 시위진압에 관여하였다는 주장의 근거를 찾으려 한 것이 아니라, 전두환이 시위진압에 관여하였다는 주장의 근거를 찾으려 혈안이었다. 그럴진대, 노태우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아무 관계가 없었으니, 1995년 5월 단체의 주장은 이 시점에서는 "전두환이 광주사태를 야기했다", 즉 전두환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야기했다"로 귀결된다. .


1988년 12월 7일 광주청문회 때 무장 공비들 사진을 광주 시민군 사진이라고 사기치면서 일약 청문회 스타 1호로 등극하는 이해찬의 모습.

   그런데, 우리가 서울의 김대중 홍위병들이 지정한 명칭 "광주사태"와 노태우 정권이 지정한 "518광주민주화운동" 중 어느 명칭을 선호하든 누가 광주사태를 야기했느냐의 질문에 우선하여야 하는 질문은 "누가 광주에 해방구를 설치하였느냐?"는 질문이다. 오늘날 중국 영토가 넓지만 모택동은 한 지역 한 지역에 먼저 해방구를 설치하고 점령 지구를 넓혀 나갔다. 김일성도 6.25남침 전에 남로당에 해방구 설치 지령을 내렸고, 광주사태 당시는 여전히 북한이 해방구 설치를 목적으로 무장공비들을 남파하던 시점이었다. 이해찬이 광주청문회 때 무장공비 사진이 광주시민군 사진이라고 사기쳐 일약 청문회 스타로 등극한 사건 역시 그만큼 무장공비가 거리적으로 시간적으로 가까이 있었던 시대 배경을 말해 준다.


중무장한 518광주시민군


5월 21일 광주시민군이 무슨 이유로 전남도청을 점령하고 해방구를 설치하였느냐의 의문에 대한 한 단서가 과연 누가 이 시민군 보초병이었느냐의 질문이다. 힌츠페터를 광주로 데려온 자들은 시민군이 전남대생이라고 말했다. 5월 단체들은 전남대가 평화시위했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면 이 시민군 보초병의 철모와 군복과 장비는 어디서 왔는가? 돌발적으로 시민군 보초병이 생겼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남대가 보초병을 훈련시켜 두었는가? 실제로는 전남대 학생회 간부들이 광주사태 당시 광주에 없었기에 그런 가정도 불가능하다.


시민군 보초병들이 출입을 금지시켜 힌츠페터가 도청 안에서부터 촬영하지는 못했지만 수기에 기록하였으며, KBS가 "푸른 눈의 목격자"를 편집할 때 숨기는 장면들 중 하나가 바로 이 장면이다.  시민군이 도청을 점령하자마자 보초병들이 아주 빠르게 자기 위치로 가서 근무를 서기 시작했다.  보초 근무는 현역병도 훈련이 필요한데, 어떻게 자기 초소를 미리 알고 순식간에 시민군 초병들이 근무를 하기 시작할 수 있었을까?  분명 조직적인 사전 준비가 있었다.  전남대가 그런 사전 준비를 하지 않았음은 분명하기에 어느 배후 세력이 사전 준비를 시켰느냐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다.  


5월 21일 시민군이 도청을 점령하였을 때 시민군은 엄청난 양의 실탄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동사무에서 가져온 것이라느 것이 5월 단체의 입장인 듯하나, 저 철모들과 저런 실탄들이 동사무소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민주화운동하는데 저런 철모와 총기들과 실탄들이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지만원 박사께서 노태우 정권이 지정한 명칭 대신 김대중의 서울 홍위병들이 지정한 광주사태라는 명칭을 사용하셨다는 이유로 5월 단체들이 고소할 때 선행되어야 하는 질문은 해방구 설치의 주체는 누구였으며, 민주화운동하는데 저런 철모와 총기들과 실탄들이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



1980년 봄 김일성이 중국에 가서 년 5월15일에서 5월20일어간에 남한에서 민중봉기를 일으키면서 남침을 감행할 것임을 통보하던 바로 그 무렵 북한군 특수부대가 여러 루트를 통해 침투하고 있었다. (발견된 무장간첩들은 침투한 전체 간첩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광주시민으로 위장하고 유혈폭동 선동하기 위해 침투하다가 붙잡힌 간첩 이창룡


12.12-5.18 재판의 패자는 518 단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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