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 연구사료 광주사태 33주년 기념 신간 5.18 연구도서 "역사로서의 5.18"
역사로서의 5.18 제1권: 광주사태의 발단과 유언비어 역사로서의 5.18 제2권: 5.18 무장봉기 주동자들의 실체 
역사로서의 5.18 제3권: 광주청문회에서 드러난 5.18 역사로서의 5.18 제4권: 5.18재판 법리의 모순 
구국의 영웅 전두환과 5.18떡검 채동욱 Chun Doo Whan vs Chae Dong 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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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주동자 박형선과 문재인의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

5.18재판 논리는 채동욱의 논리였다. 무장반란을 일으킬 목적으로 군 무기고에서 무기를 탈취하여 폭동을 일으킨 폭도들이 헌법기관이라는 판결은 상식을 뒤집는 판결이었으며 그런 판결 배후에 채동욱 떡검이 있었다. 채동욱의 논리가 5.18 재판을 움직이는 지렛대였으며, 5.18재판 판결이 한국 근현대사 논리를 움직이는 지렛대였다. 채동욱의 논리가 한국인의 세계관 및 근현대사를 뒤바꾸어 놓았다. 반란을 일으킨 쪽은 무장폭도들이었으며, 전두환 당보안사령관은 폭동 진압에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채동욱의 세치 혀가 전두환이 반란수괴라는 올가미를 씌웠다. 채동욱은 검사였다. 그는 말싸움을 잘한다는 의미에서 검사였다. 그런 그가 말싸움에 대패한 사건이 바로 채동욱 사태이다. 조선일보 기사 한 방에 그가 나가 떨어졌다. 

5.18떡검이 무너지면 5.18사기꾼들의 모든 논리가 무너진다. 그런데 왜 5.18사기꾼들이 그를 지켜주지 못하였을까? 지난 5월초에 광주사태 33주년을 맞이하여 종편 채널A와 TV조선이 탈북자들의 증언 등 몇 가지 객관적인 사실을 방송하자마자 5.18단체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백기 항복을 하였다. 5.18사기꾼들은 방송 허가를 취소하겠다며 압박하였으며 두 언론사는 이런 압박을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무릎끊고 사과하였다. 그렇다면 조선일보사가 사법 권력의 칼지루를 쥔 채동욱 검찰총장 싸움 상대가 될 수 있었을까? 싸움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채동욱의 완패였다. 말싸움에서 백전 백승을 하며 검철총장의 지위에 오른 자가 말싸움에서 K.O. 당한 사건이 바로 채동욱 사태이다. 지난 5월에 그토록 기세동등하였던 5.18사기꾼들이 전혀 그들의 영웅 채동욱을 지켜주지 못한 사건이 채동욱 사태이다.  

자고로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우리나라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 수록 첩이 많은 사회였다. 혼외 아들이 있다는 것이 옛날의 벼슬아치들에게는 큰 흠이 아니었을 것이다. 채동욱 사태는 그에게 혼외 아들이 있다는 기사에서 비롯되었지만, 사실 채동욱 사태의 본질은 그가 거짓말을 하였다는 사람들의 의혹이었다. 그가 검찰총장으로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방어하는 방식이 오히려 그에 대한 의혹을 키웠다. 채동욱과 임여인은 채동욱에게 혼외 아들이 있다는 기사를 완전 부정하는 방법으로 그의 검찰총장 자리를 지켜주려는 전략을 썼다. 그러나 정직의 권위 상실이 그에게 치명적이었다. 만약 정직으로 정면 돌파하였더라면 정직함의 도덕성의 권위를 지킬 수 있었으며 최소한 채동욱 사태로까지 일이 일파만파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선이 채동욱의 처세술이었으며, 겉으로 잘 포장된 그의 위선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파도남"이라는 그의 별명이다. 청문회를 며칠 앞두고 그의 내연녀는 새 집으로 이사가며 청문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는 말을 하였다. 파도 파도 미담만 있었는가? 아니다. 채동욱의 내연녀 숨기기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연녀와 혼외 아들의 존재를 숨기면서 "파도남"이라는 칭호를 얻었을 때 바로 그것이 위선이다. 그가 말하는 사회 정의 실현은 또 하나의 위선이었다. 자기는 첩과 혼외 아들을 숨겨 두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 친인척을 집요하게 수사하여 억울한 누명을 씌우면서 재산을 강탈하는 것을 그는 사회 정의 실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법의 칼 자루를 망나니처럼 휘두르고 있던 자신에게는 꽁꽁 감추는 비밀이 있었다. 법무부의 감찰을 받느니 사표를 내는 편을 선택하였을 만큼 숨기는 비밀이 있었다.  

채동욱은 말싸움에서 변호사를 이기는 검사이다. 그는 말싸움을 할 줄 아는 떡검사요, 말싸움판 씨름꾼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말싸움인가? 거짓과 진실의 대결에서 거짓 편에 서기 위한 싸움이었는가? 5.18 재판 때 전두환 전 대통령 변호인의 말이 옳았고, 채동욱의 주장이 틀렸다. 만약 이번 채동욱 사태 때도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그의 위선의 논리가 승리를 거두었다면 그것이 한국 사회의 불행이었을 것이다. 처음 그는 소송 협박을 무기로 삼았다. 이것이 조선일보사도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되었으며 전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관전하는 싸움이 되었다. 싸움판이 커지자 법무부가 개입하였으며, 자신이 법무부의 감찰 대상이 되었을 때 그것은 말장난으로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그에게 감찰만은 기피하여야 할 약점이 있었다.

5.18 재판 때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비자금 누명을 씌워 사형을 구형하였던 채동욱이 검찰총장이 되자마자 전 전 대통령 친인척 및 그들의 지인들까지 괴롭힌 것은 과잉행동이었으며, 그의 이런 과잉 행동 배후에 그가 숨기는 비밀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실은 금년 봄 전두환 법을 발의한 집단이 감추려고 하는 비밀이 있었다. 또 다시 위헌을 해가며 악법을 발의한 집단의 특징은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로 거액의 비자금을 챙긴 자들 및 그들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집단이다. 부산저축은행 대형금융비리 사건은 마땅히 새 정부 새 검찰총장이 수사하여야 할 사건인데, 이 사건이 은폐되게 하는 방법으로서 전두환 관련 악법을 발의하였다. 부산저축은행 등에서 악행을 일삼은 세력이 악법을 발의하였다. 요컨대 문재인 및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려 했던 세력이 전두환 관련 악법을 발의하였다. 

5.18 법리에는 잘못된 가정이 깔려 있다. 만약 이석기의 무장반란 음모가 성사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4.19 때도 발포하였던 경찰관들이 사형 당하였고, 5.18 때도 애매한 군인들이 학살 누명을 썼으니 군경이 이석기의 무장반란을 누가 진압할 수 있었을까? 금년 광주사태 33주년에 한국이 그런 위기에 처해 있었다. 광주사태 33주년을 앞두고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시도를 하고 있었으며, 이석기는 북한이 북한군에 국군 군복을 입히고 남침하는 동시 국가 주요 시설들을 폭파하며 무장반란을 일으킬 준비를 철저히 해 두고 있었다. 설사 어느 군경이 이석기의 RO의 무장반란 진압을 시도한다고 해도 이석기는 자신의 졸개들의 무장반란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군경에게 학살 누명을 씌우는 소문을 퍼뜨렸을 것이다. 광주사태 유언비어도 무장반란 주동자들이 그런 목적으로 제조하여 유포하였었다.

1980년 5월 21일 시민군 사상자가 발생한 이유는 운전이 미숙한 폭도들이 과속으로 차를 몰며 무기 탈취하러 다니다가 광주 외곽도로에서 대형 교통사고들을 냈기 때문이었으며, 청소년 시민군들의 총기 오발 사고 및 시민군으로 위장한 불순세력이 고의적으로 시민군 등을 향하여 발포한 사고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민군 상황실장으로서 무장반란 주동자였던 이재의 등은 시민군의 무장반란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군인이 광주시민들을 학살하였다는 유언비어를 제조해 내고, 도청 앞 발포 유언비어를 지어내었다.

11공수가 5월 20일 금남로 일대 시위진압에 동원되었을 때는 그 날 밤 시위대 포위에 갇히고 그 다음 날 갑작스럽게 무장시민군이 출현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병들에게 실탄이 지급되지 않았다. 즉, 11공수 2개 연대가 도청 일대에서 겹겹이 에워싼 무장시민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여 조선대 임시숙소로 이동할 수 있기 전까지는 사병들에게 지급할 수 있는 실탄 확보가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도청 앞 집단 발포라는 것은 없었다. 21일 오후 도청 광장에서 울린 총성은 동구청(현재의 동구청과 위치가 다른 구동구청) 쪽에서 시민군이 쏘는 총성이었다. 만약 이석기의 무장반란이 성사되었다면 어떻게 되었는가? 무장반란은 사전 준비되어 있었으나 무장반란을 정당화시킬 목적으로 군경 집단발포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군경이 집단 발포하였기 때문에 시민들이 무장한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바로 그것이 광주사태 유언비어 전개 과정이었다. 주동자들은 무장반란을 정당화시킬 목적으로 군경에게 학살 누명을 씌우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이석기가 무장반란 음모를 꾸몄을 때 그 전략은 시민들 중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혼란 상태를 야기하는 것이다. 한 명이라도 시민 사상자가 발생하면 무장폭동을 정당화시키며 훨씬 더 큰 무장폭동을 선동할 수 있다. 광주사태 때도 1980년 5월 21일 아침 9시부터 아세아자동차에서 출고도 안된 각종 군용트럭들을 탈취하여 과속으로 몰며 전라도 44개 무기고를 동시다발적으로 습격하러 다녔을 때 대형교통사고들이 발생하였다. 그때 주동자들이 시민군 교통사고 희생자들을 어떻게 학살 희생자로 둔갑시키며 유언비어를 지어 퍼뜨렸었는지를 상기해 보라.

군인들에게 학살 누명을 씌우기 위해 써먹기 좋은 이름이 전두환이었다. 지금 채동욱이 채도경이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할 때 그의 논리는 채도경의 유전자를 본 사람이 있느냐이다. 마찬가지 논리가 그의 5.18 논리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광주시민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전두환이 발포 명령을 내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것은 처음부터 근거 없는 주장이었다. 그럼에도 5.18사기꾼들이 자신들의 무장반란을 정당화시킬 목적으로 꾸며낸 유언비어가 사실이라는 가정, 즉 전두환이 발포 명령자라는 잘못된 가정 하에 5.18 재판이 전개되었다. 그런데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폭동 진압에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채동욱 떡검은 전두환 사형 구형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비자금 누명을 조작하여 뒤집어 씌웠다. 채동욱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인들 마음 속을 독심술로 읽어보니 대가를 바라고 정치자금을 제공하였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전두환이 발포명령자였다는 가정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가정이었던 것처럼 그에게 비자금 누명을 씌우는 가정 또한 잘못된 가정이었다. 채동욱 떡검이 주도적 역할을 한 5.18 재판에는 이런 잘못된 가정들이 깔려 있다.

채동욱의 이런 잘못된 가정 하에 진행된 5.18 재판의 수혜자가 5.18사기꾼들과 5.18 장사아치들이었다. 그들은 막대한 보상금을 받거나 5.18 장사로 정권을 거머쥐었다. 부산저축은행 대형금융비리 사건은 5.18장사아치들이 민주화운동을 했었던 것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들 중 하나이다. 정치 권력과 사법 권력을 이용해 은행돈을 갈퀴로 마구 긁어가는 자들이 민주화운동가들인가 금융 마피아들인가? 서민들의 푼돈을 훔쳐가 초호화생활을 한 이런 정권형 금융 마피아 조직을 새 정부 검찰은 마땅히 수사하여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언론마저 장악한 금융 마피아 조직이 전두환 관련 악법을 제정하고 친인척이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못하게 하고 재산을 강탈하였다. 그 본질이 금융 마피아인 민주팔이들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지 않게 하는 수단으로서 전두환 관력 악법을 활용하였다. 전두환을 완전히 죽이면 금융 마피아 조직은 안전한가? 금융 마피아 조직 정점에 박형선과 문재인이 있었다. 전두환 친인척을 털만큼 털었으니 이제 그런 악법을 발의한 세력은 과연 얼마나 깨끗하였는지 털어 보아야 할 차례가 아니겠는가?

5.18사건도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사건도 모두 광주일고 동문들이 저지른 사건이라는 데에 두 사건의 공통점이 있다. 5.18떡검 채동욱이 이상한 법리로 광주일고 동문들의 엄청난 무장반란 음모를 정당화시켜 주었을 때 그 필연이 저축은행 금융비리 사건처럼 광주사태 주동세력이 저지르는 또 다른 대형범죄였다. 그러기에 5.18사건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사건은 도저히 그냥 덮어둘 수 없는 사건일 것이다.

광주사태 주동자 박형선 등 광주일고 동문들이 저 멀리 부산에 와서 대형금융비리를 저지르기 위해서는 떡검의 협조가 필요하였다. 아래 도표는 검찰 고위급이 로비 대상이었음을 보여준다.

비단 스폰서 검사 사건뿐만 아니라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 사건도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는 사건이다.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서라며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를 17년째 악착같이 하였던 채동욱이 어째서 그 비자금 액수가 조 단위인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하지 않는가? 피해자들 중에는 6.25 전쟁 때 나라를 지켰던 가난한 노인들도 많다.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평생 아껴 모은 전 재산을 큰 도둑에게 빼앗긴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다. 이 큰 도둑놈들이 갈취해간 비자금들을 환수하여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 피해자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사회 정의를 세우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 시절 자행된 천문학적 액수의 비자금 사건에 대해서는 채동욱이 전혀 수사를 하려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정치자금은 단 한 명의 피해자도 없는 정치자금이었다. 그 자금은 나라 경제를 발전시켜 나라 빚을 전부 갚고 한국 기업들이 오대양 육대주에서 수출하여 외화벌이를 하게 해 주는데 사용되었으므로 단 한 명의 피해자도 없고 전 국민이 큰 혜택을 보았다. 그런데, 노무현의 사람들이 부산저축은행 금고에서 돈을 맘대로 꺼내가 비자금을 마련한 사건은 수천 명의 소시민 에금주들이 모두 피해자가 된 사건이었다. 아래 도표는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 때 '광주일고' 출신들간에 은행 돈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무엇이 노무현 중도좌파정권의 개혁이었던가? 그것은 검찰을 떡검 만드는 개혁이었으며 그 하수인이 문재인이었다.

미국의 자기 딸에게 송금한 600만불이 어디서 났는가? 박연차가 준 것이었다. 박연차는 그 많은 현금이 어디서 났는가? 부산저축은행 돈을 자기 지갑 돈처럼 꺼내 쓴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노무현 정부 금융감독원이 감독을 한 것이 아니라 뒤에서 망을 봐 주었기에 가능한 비리였다. 채동욱이 부산 떡검이엇던 바로 그 시기에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은 금융감독원에 압력성 청탁 전화를 한 대가로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70억원을 받아 챙겼다.

노무현의 600만불은 노무현의 사람들이 뇌물 명목 등으로 부산저축은행에서 가져간 천문학적 비자금의 극히 일부분일 뿐인데 노무현이 자살하였다고 해서 그 비리 사건을 수사하지 않는가?

노무현이 서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거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런데 그 공약을 믿고 노무현을 찍어준 사람들이 노무현의 사람들의 지능적인 범죄의 희생자가 되었다. 가난한 서민이 굶주리다 못해 은행에서 단 돈 십 만원만 훔쳐도 법의 혹독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의 사람들이 부산저축은행에서 조 단위의 돈을 훔쳐간 범죄에 대해서는 수사조차 하지 않는다. 문재인이 청외대 정무수석으로 있는 동안 금감원은 식물이 되어 버렸으니 감히 누가 그 사건을 조사할 수 있었겠는가? 지난해 11월 14일에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이 지적한 대로 문재인과 광주일고 동문들은 "신용불량자들의 등골을 빼내 자신들의 잇속을 챙긴 '신불자 게이트'였다.  

2009년 노무현의 비자금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광주에서는 “박형선 회장도 이제 끝이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노무현의 자살로 갑자기 수사가 흐지부지 끝나자 수사 기간 내내 가슴을 졸였던 박형선이 안도의 숨을 내쉬고 다시 활개를 쳤다. 광주사태 주동자 박형선이 부산저축은행 금고를 사금고로 여기며 대형금융비리를 저지를 수 있었던 데에는 문재인의 비호도 있었다. 광주운동권 박형선은 무슨 권한으로 부산저축은행에서 70억원을 빼돌려 노무현의 최측근 문재인에게 주었으며, 박형선으로부터 부산저축은행 동 70억원을 받은 문재인은 어째서 금감원에 압력을 넣어 부산저축은행 대형금융비리를 조사하지 못하게 하였는가? 김회선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대로 이것은 검찰의 수사가 필요한 사건임이 아래 기사를 읽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문재인이 그 70억원은 수임료가 말할 때에 그는 도대체 부산저축은행 대형금융비리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인가? 도둑도 돈만 있으면 변호사에게 수임료를 줄 수 있다는 논리인가? 변호사로서의 문재인은 도둑이 돈 주면 도둑 편이 되어 변호한다는 논리인가? 그런데 변호해 준 적도 없이 70억원이라는 거액의 수임료를 챙겼다. 수임료가 그렇게 비싸면 문재인같은 특권층 변호사는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아닌가? 변호사가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감투를 쓰면 수임료가 그렇게 천문학적 고액으로 올라가는 것이라는 논리라면 바로 그것이 부정부패가 아닌가? 금감원에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민정수석이 박형선으로부터 부산저축은행 돈 수십 억원을 받았으며, 문재인이 그 돈을 받자마자 금융감독원은 부산저축은행의 금융비리에 대해서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갑자기 돈방석에 앉은 광주의 농민운동권 박형선이 언제부터 대통령과 함께 해외 여행하는 특권층이었는가? 박형선이 부산저축은행 돈 5,000억원을 도대체 무슨 이유로 갑자기 캄보디아에 투자하였는가? 그런데 캄보디아에 투자하였다는 돈 5,000억원이 공중으로 증발한 것은 아닐 텐데도 행방 불명이다. 5,000억원이 갑자기 없어졌으며 노무현이 김정일과의 정상회담 앞두고 대북비밀송금한 것인지, 아니면 전부 노무현 비자금이 된 것인지 수사가 있어야 함에도 검찰이 전혀 수사하지 않았다. 다먄 알려진 것은 광주사태 주동자 윤한봉의 여동생으로서 박형선의 부인으로서 광주사태 당시 MBC방송국 방화 주동자였던 윤경자가 부부 동반으로 노무현과 같이 캄보디아로 갔으며, 아래의 국회도서관 검색 자료에서 보듯 "노무현 대통령이 남편을 훈센 총리에게 직접 소개했다"고 자랑하며 다녔다는 사실이다. 

박형선이 캄보디아로

위에 캡쳐로 부분 인용된 기사가 지적하는 사실은 부산저축은행에서 사라진 8조원 중 노무현의 비자금이 큰 몫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8조원 중 5,000 억원은 캄보디아로 보내진 사실이 확인되었으나, 그 후 그 돈이 통째로 사라졌다. 그래서 동 기사는 부산저축은행 사건의 핵심은 캄보디아 사업에 숨겨둔 비자금 찾기라는 사실을 밝힌다. 동 기사에서 백승구 기자가 밝혀준 또 하나의 사실은 "박형선은 노무현 정권 때 광주와 전남의 청와대였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왜 박형선은 2009년 노무현 비자금 사건 수사가 중단되자 '즉다 살았다'는 반응을 보였을까? 그것은 바로 노무현 비자금 사건의 핵이 부산저축은행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농민운동권으로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주동자였던 박형선은 김대중 정부시절 해동건설 회장이 되었다. 박형선 등 광주일고 동문들이 장악한 부산저축은행이 김대중의 고향 신안군 도시개발사업에 3,000억원을 투자하였다. 도시개발사업에 투자된 돈은 고스란히 해동건설 회장 손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으니, 그것은 은행 경영이라기보다 도둑들의 땅 따먹기였다. 그런데 농민운동권 박형선이 국제사회에 대해 아는 것이 뭐가 있다고 갑자기 김대중의 고향 개발사업에 투자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부산저축은행이 캄보디아에 투자하게 한 것일까?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 이 점은 그냥 덮고 넘어가서는 안될 문제일 것이다. 

이것을 사회정의 실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정신을 가진 사람들일까? 사회적 약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온갖 누명을 씌워 친인척 재산까지 강탈해가면서 기득권 김대중과 노무현 세력이 저지른 대형금융비리는 덮어주는 것이 사회 정의인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자신의 비리는 감추고 남에게 비리 누명을 씌우는 것이 사회 정의인 것처럼 말하였다. 이것이 채동욱의 논리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에 그 귀결이 자기 아들이 자기 아들임을 부정하는 비극이다. 이제 이런 잘못된 논리를 바로 잡는 것이 채동욱 본인을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이롭다. 

손에 권총을 들어야만 은행 강도가 아니다. 권총을 든 생계형 은행강도는 좀도둑에 불과하다. 그리고 은행강도는 경찰이 막을 수 있으며 체포할 수 있다. 그러나 왕의 남자들 혹은 노무현의 남자들이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조 단위로 은행 돈을 털어갈 때 도저히 경찰이 막지 못한다. 은행강도에게 은행이 털리면 은행이 손해볼 뿐 그 피해가 예금주에게 가지 않지마는 김대중과 노무현의 측근들에게 털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예금주들이 떠안게 된다. 노무현의 남자들은 법 지식을 이용하여 합법적으로 돈을 강탈해 갔기에 권총 든 강도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은행강도들이었다.

광주사태 주동자 경력을 빼면 농민운동권에 불과한 박형선이 노무현을 움직여 합법적으로 거액의 은행 돈을 캄보디아로 실어가는 길을 열어놓았다. 즉, 노무현이 국가정상으로서 감보디아를 방문하기 한 달 전(2006뇬 10월), 금감원이 해외 PF(proejct finacing 특정 프러젝트에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 투자를 허용하는 기상천외한 일이 일어났다. 김대중 정부시절 광주에서 벼락부자가 되어 부산저축은행 대주주가 된 박형선의 비리를 금감원이 감시하기는커녕 합법적으로 비리를 저지를수 있는 길을 얼어주었다. 저축은행에 예금한 서민들은 은행을 믿는데, 박형선은 자기 사업에 은행 돈을 물쓰듯 투자하였으며, 노무현 정권은 그릐 이런 비리를 제도적으로 지원해 주었던 것이다.

위의 월간조선 기사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이 캄보디아에 신도시를 건설한다며 투자한 돈이 자그만치 4000억원인데, 그 중 3000 억원이 공중에서 사라졌다. 검찰은 최소한 수백억 원이 조세피난처를 통해 빼돌려진 정황을 포착하고서도 어쩐 일인지 수사에 손을 놓고 있다. 월간조선은 이 3000 억원이 노무현이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밀송금한 금액의 일부였을 것으로 관찰하였다. 노무현과 박형선이 어떤 관계였는지에 대해서는 밝힐 필요가 있다. 노무현이 1989년 광주청문회 때 전두환 전 대통령 면사에 명패를 던졌다. 노무현이 5.18 연구분야의 박사였기 때문이었는가? 아니다. 그가 광주사태에 대하여 아는 전부는 김현장이 구례 천안사에서 구술하는 대로 작성한 유언비어 문건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이 전부였다. http://www.study21.org/518/photo/nk/bad-rumor.htm 에 보면 김현장이 전주성당 문정현 신부의 협조로 조선대학교 민주투쟁위원회란 위장명의로 전국에 유포한 5.18성명서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 육필 원본이 있다. 구례에 머물고 있던 김현장은 서울의 전두환도 광주사태 현장도 전혀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간첩 손성모가 스님으로 위장하고 광주와 천안사를 오가며 광주사태 공작을 하고 있던 천안사에서 누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썼다.

이석기의 무장반란 음모는 남조선민족해방을 위한 준비였다. 지금은 김현장씨 정치 성향이 많이 건전해졌지만 광주사태 직전 김현장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 하부조직 "민주투쟁위원회"를 조선대에 심는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광주사태 주동자 박형선이 그의 친구였다. 간첩 손성모는 광주의 증심사와 천안사를 오가며 광주사태 공작을 하고 있었는데, 그 증심사가 바로 남민전 하부조직 결성을 위한 비밀공간이었다. 박형선과 김현장이 친구간이었으며 김현장이 유포한 유언비어 문건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이 광주운동권으로서 광주사태 주동세력의 일원이었던 박형선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1980년대의 김현장은 남조선민족해방운동을 하는 운동권 일원이었으며, 그래서 그가 1982년에는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주역이었다. 이때 노무현이 김현장씨 변호를 자청하였으며 이것이 박형선과 노무현이 처음 만난 계기였으며, 이후 노무현의 정치인이 되자 박형선이 돈을 쓰며 노사모 형성에 앞장섰다. 이런 사실을 2002년 5월 6일 광주지역의 인터넷 매체인 <전라도닷컴>은 '노풍의 광주 주역들'이란 기사에서 자세히 보도하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재계 기득권으로 급부상한 박형선과 노무현과의 정경유착의 고리 시발점이 바로 그들의 일치하는 이념, 즉 김현장의 남조선민족해방운동이었다.

2003년 2월 6일자 <오마이뉴스>도 노무현 당선자가 1월 26일 광주로 달려가 한 호텔에서 박형선과 정찬용을 만난 사실, 그리고 노무현 후원자였던 박형선이 윤한봉 및 자신과 더불어 함께 광주사태 주동자였던 정찬용씨를 노무현에게 인사수석으로 추천한 사실을 보도한다. 박형선은 광주운동권으로 왕의 남자 인맥을 구축해 놓고 노무현 정권 시절 그의 기업이 급성장하였다. 자, 5.18 재판 때 채동욱 떡검이 자신의 관심법으로 보니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인들은 대가를 바라고 제공한 것이라며 2205억원을 추징하고 사형을 구형하였다. 그런데 국가가 5대양 6대주로 수출 시장을 활짝 열어 주었을 때 기업들도 국가에 무언가 기여할 책임이 있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것을 채동욱이 거꾸로 주장하였다. 채동욱의 논리를 노무현에게도 공평하게 적용하면 박형선이 노무현에게 제공한 정치자금은 대가를 바라는 뇌물이었음이 분명하지 아니한가? 박형선의 큰 도둑질은 노무현 정권이 그가 안심하고 부산저축은행 등에서 도둑질할 수 있도록 비호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채동욱처럼 박형선도 그 출발점이 거짓말이었다. 무장반란 음모를 꾸미던 광주운동권 중 윤한봉이 도망갔지만 박형선은 연행되었으므로 박형선에 대한 수사만 이루어졌어도 광주사태 발생 원인의 수수께끼는 훨씬 더 빨리 풀어지고, 그 진상이 광주사태 당시에 금방 밝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박형선의 꾀병을 부려 전남대 대학병원에 입원하였으며, 광주일고 동문들로 구성된 전남대 의시들은 박형선을 장기 입원시키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중병이라는 허위진단서를 발급하여 그가 수사를 면하게 해 주었다. 광주일고 동문들이 그렇게 사기치던 수법이 재탕된 것이 바로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 사건이었다. 광주사태 때는 광주일고 동문들 중 허위진단서 발급해 주는 동문들의 도움으로 수사를 피했던 박형선이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 사건 때는 노무현의 도움으로 수사를 피했다. 대통령 재임시에는 정치 권력으로 박형선을 지켜주었던 노무현이 퇴임 후에는 자살로 비자금 수사가 중단되게 하여 그를 지켜 주었다.

박형선은 본래 농민운동권이었다. 그는 건축학을 전공하거나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인데 그가 해동건설이란 이름으로 건설회사를 시작하자마자 노무현 정부는 '영산강 하구둑, 새만금 개발, 광양시 하수처리장, 여수세계박람회 건설, 서울 천호대로 광나루 역과 낙동강 공사를 그가 독차지하게 하였다. 단적으로 말해, 노무현이 나라 돈을 펑펑 쓰며 박형선을 큰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것도 부족하였던지 박형선이 자신의 건설사업에 부산저축은행 돈을 가져다 썼다. 남들처럼 대출 이자를 내고 갖다 쓴 것도 아니요, 무이자 대출도 아니라, 그냥 자기 돈처럼 가져다 썼다.

박형선이 저축은행돈을 자기 사업자금으로 쓴 사실은 한겨레도 인정한다. 2011년 12월 13일자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박형선 회장은 경기도 시흥시 영각사 납골당 사업권을 인수한 뒤, 부산저축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해 1280억원을 불법대출받고, 대전 관저지구 아파트 건설 사업과 관련해 지인 명의로 매입한 사업부지를 부산저축은행 특수목적법인(SPC)에 되팔아 9억4000만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박 회장의 혐의엔 세무조사를 받게 된 부산2저축은행 임원의 친척에게 이를 무마해주겠다며 1억5000만원을 받은 내용도 포함됐다."

농민운동권 박형선에게 은행 세무조사를 면하게 해 주는 재주도 있었나? 그는 부산2저축은행 임원의 친척에게 세무조사를 무마해 주겠다며 1억5000만원이나 뜯어냈다.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70억원이 받아 챙긴 문재인이 노무현 정부 정무수석으로 재직하면서 하는 일이 자기에게 뇌물 준 은행 세무조사를 면하게 해 주는 일이었는가? 박형선은 광주일고 동문들이 부산저축은행에서 가져간 8조원 중에서 노무현의 비자금과 관련된 건에 대해서는 수사를 받지 않고 부산저축은행 돈 1280억원으로 경기도 시흥 영각사 납골당 사업을 한 것에 대해서만 재판을 받아 금년 2013년 6월 26일 징역 1년 6개월이 확정되었다.

이석기가 무장반란음모를 꾸몄을 때 군사작전지도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광주사태 당시에는 민간인이 군사작전용 지도를 구하기가 힘들었는데 윤한봉이 무기고 위치를 사전 답사하며 무장봉기를 일으킬 준비를 하였을 무렵 그에게 군사작전용 지도를 구해다 준 인물이 바로 박형선의 형 박화강이었다. 시민군 선봉에 서서 무장봉기를 조직하였던 윤상원과 영혼 결혼식을 올린 박기순이 바로 박형선의 여동생이다. 5.18사기꾼들이 5.18지정곡으로 삼으려 하는 "임을 향한 행진곡"이 바로 박형선의 여동생과 매체에게 바쳐진 노래였다.



글 작성일: 2013년 10월 9일

이 글을 옮겨가실 때 사용하실 출처 링크는 http://www.study21.org/518/capture/Moonjae.htm 입니다.


BBC International

*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의 주역이었던 광주일고 동문들에 대해서는 역사로서의 5.18 제4권: 5.18재판 법리의 모순 192쪽 이하 등에서,그리고 광주운동권이 무장봉기를 사전 준비한 사실 등에 대해서는 역사로서의 5.18 제2권: 5.18 무장봉기 주동자들의 실체 등에서 자세히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이석기 및 채동욱 사태에 즈음하여 재조명하는 1980년 5월 19일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 사건 관련자 호위무사 채동욱

두 집 살림하는 5.18사기꾼 검사 채동욱의 비자금 환수하자

5.18인민군 검사 채동욱과의 역사논리 전쟁 돌입

전두환의 미환수 통치자금 vs 시민군의 미회수 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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